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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흔적

명절













어린 시절에는 명절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간식들이나 여러 명절 음식들, 세뱃돈을 받든 그냥 용돈을 받든 아무튼 뭔가 살 수 있을만큼 주머니를 불릴 수 있었던 기회.. 등등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일가친척이 큰집에 모여 윷놀이도 하는 나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가정이나 그렇듯 IMF는 그 '일가 친척'들의 삶을 쉽지 않게 만들었고, 누군가는 부도를 맞고, 누군가는 이민을 가며 아름다운 명절 모습은 그렇게 없어져갔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명절에 정기적으로 모이는건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 가족 뿐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여러 감정적인 문제들로 인한 잦은 말다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심각한 분위기는 '명절'을 괴로움으로 남게 했다. (여기에 온 친척들 앞에서 아버지와 소리지르며 싸우고 박차고 나와 친구들에게 전화하며 서러움에 펑펑 울었던 새내기 시절의 기억까지 더해져 명절엔 왠지 더 가족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내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 중에 하나인지라 언젠가 다른 글에서 다룰 일이 있을 것..)

여튼 언제부턴가 아버지 직장 등 이런저런 문제들로 우리 가족들도 명절이 아닌 다른 기간에 큰집을 찾고, 정작 명절에는 전주에 머물게 되었는데.. 덕분에 명절에 큰집에 찾아가는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 혼자만의 책임이 되었다. 그래서 한번은 혼자 큰집에 찾아가 부모님의 연애스토리를 할아버지 입을 통해 듣기도 했지만(엄청 재밌었다는 ㅋㅋ), 사실 대부분의 경우엔 아프다는 핑계로 큰집에도 가지 않고,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고향에도 가지 않고 그저 혼자만의 자유를 누렸다. 애인님과 놀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할일). 뭐 혹시 놀 사람이 없더라도 혼자서도 잘 노니 ㅋㅋ

이번 명절은 드디어 부모님이 나에게 진로에 관한 잔소리를 접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변곡점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은 물론이고, 졸업한 이후에 대안학교에서 인턴을 할 때에 정점을 찍고,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중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던 고시드립은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의 추석에까지 이어지더니(이건 진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맞은 설에서야 자취를 감추었다. 평소에도 심한 잔소리는 명절만 되면 어쩜 그렇게 증폭되는지 @_@;; 

암튼 추석은 보통 학기 중에 있어서 좀 힘들더라도 앞으로 설에는 좀 고향에 가서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항상 명절엔 집에도 안가고 기숙사나 자취방에 남아있었는데 식당도 잘 안하고 하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못 먹었다. 나도 이제 명절엔 맛있는 것 좀 먹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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