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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흔적

대학원에 오고 싶었던 이유













2011년도 대학원 입학시험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저번에는 나 포함 4명이 시험을 봤는데 이번에도 어영부영 친구 4명이 시험을 본다. 원래 다들 이렇게 대학원에 가는 것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닌데 -_-ㅋ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당시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불과 몇달 전이건만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ㅋ

2009년 1학기는 말 그대로 '헬'이었다. 전공수업 6과목, 교생, 졸업논문이 겹쳤고 생활비는 벌어야 했기에 과외도 2-3개 하고 있었다. 요즘도 나는 살짝만 피곤하면 다크가 내려오곤 하는데 아무래도 그때 내려온 다크가 다 안올라가서 그런가 싶을 정도.. 어찌어찌 교생도 겨우 마치고, 졸업논문도 발로 쓰긴 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넘어가게 되고, 교생기간 과외를 하지 못해 생활비가 위태로웠지만 방세가 밀리면 방학 때 번다는 마음을 가졌던.. 2009년 6월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해방감'이었다. 계절학기 한 과목이 남아있긴 했지만 1학기도 버텼는데 이깟 계절학기쯤이야(F만 안 받으면 되지 -_-ㅋ)

졸업학기에 해방감을 가진다는 건 유니크한 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다들 불안해한다.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시 내 처지만 보자면.. 그닥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일단 교사 지망생이었는데 1학기에 교생+18학점+졸업논문을 처리하고 11월 시험까지 남은 기간 전력으로 공부해서 합격할 수 있는 능력자는 못된다고 생각했기에(그런 능력자가 되진 못해도 그런 능력자랑 사귈 수 있는 걸 보면 참 세상이란 모를 일이다) '어차피 이번에 못 붙을 거 내년부터 공부하지 뭐' 라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졸업예정자들과 교육학과 교수님들이 고기를 먹으러 갔던 자리였다.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다들 얘기하고 있었는데 나만 뭘 준비하고 있거나 하는 대책이 없었던 것. 여러 모로 학부때부터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고 지금은 방송통신대에 가계신 조교 선생님만 '그래 노는 것도 필요해. 근데 사회가 그걸 용납을 안하니까 문제지'라고 긍정해주셨고 다른 사람들은 대개 의아해 했던 장면이 뚜렷이 남아있다. 그런 분위기가 오히려 더 반발심을 키웠는지 나는 작정하고 놀기로 했다.

그런데 천성이 워커홀릭이어선지 방학 때 놀다가 지쳤다. -_-;;; 돈도 벌고, 친구들도 만나고, 학부생 때보다 더 열심히 동아리 공연 준비에 참여하고(졸업식 1주일 뒤에 공연 위엄 ㄷㄷ) 등등 바쁘게는 살았는데 무언가 '일'이라고 불릴만한 것을 안하다 보니 몸이 근질거렸다(http://wintree.tistory.com/entry/20090804-질러). 그러던 와중에 시골학교에서 초등학생들과 함께 이런저런 수업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한 활동가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에이 뭐 서울에 볼 일도 없는데 가서 한 학기만 살아?/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한 반 전체를 바로 담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초딩공포증 때문에 결국 그곳엔 갈 수가 없었다.

내가 선택해서 안가기로 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그래서 뭘 해볼까..라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척, 하고 걸린 것이 성미산학교 인턴. 마침 졸업논문 지도위원이셨던 선생님이 성미산학교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계셔서 잽싸게 연락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나는 9월이 되기 전에 성미산학교 인턴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경험은........ 좋았다. 그 때 뭐가 좋았는지를 다 정리하려면 ㅎㄷㄷ하니.. 나중에 따로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 다만 분명한 것은, 2009년 교생의 경험이 사실 꽤 좋았기에 중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인턴 초기에만 해도 가지고 있었는데, 대안학교를 점점 경험할수록 일반학교에는 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또 우연히 -_-;;; 지금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대안교육 관련 자료를 정리할 알바를 구한다고 연락이 와서 엑셀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작업을 하면서 전국의 대안학교 현황을 형식적인 서류의 틀에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니, 대학에는 이런 자료가 모이는 것인가!!(후에 교수님을 면담하면서 대학보다는 정부기관이 더 귀중한? 자료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이것도 놀라웠다는..) 

그때가 막 단풍 들던 무렵이었다. '아,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2010 전기 대학원시험 접수는 끝났네? -_-;;; 집에서 또 한참 그만 좀 놀고 군대나 가라고 잔소리를 듣고 1월에 성미산학교 인턴을 마친 뒤 대학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이번엔 와우를 하면서 제대로 놀기 시작했다). 인턴이 마무리될 무렵 교사할 생각은 없냐는 얘기를 들었는데, '헉 해볼까' 하다가 군대 문제도 있고 해서 일단 대학원으로.. 허허 

결국 역시 우연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2009년 1학기 그 빡센 일정에 더 빡세게 임고 공부를 했다면, 그렇게 했어도 떨어졌겠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붙어서 교사를 하고 있다면, 혹은 졸업하고 집안의 압박에 못 이겨 군대를 갔다면, 군대를 가지 않더라도 성미산학교 인턴을 해보지 않은채 다른 경험들로 그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나간 일에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겠지만 지금과는 분명히 완전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펑펑 놀고 2010년부터 임고준비했더라면 TO발표나고 대학원을 급히 찾아봤을듯 -_- 이놈의 정부는 대학원의 부흥? 을 위한 요정이더냐)

여튼 이런 우연의 결과로 이곳에 있게 되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좋다. 뭔...가 생산적으로 하는 것은 아직 너무 어렵기도 하고, 언어의 장벽도 있고(-_-;;), 익숙하지 않은 일들과 새로운 관계들이 쉽지만은 않지만.. 와보지 않았다면 모를 또 다른 세계가 여기 있고, 그 세계는 맘에 든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기에 이런게 할 일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은 좀 편한 것 같다. 

간단하게 흔적처럼 남기려고 썼던 글이 길어져버렸네. 이랬던 것도 참 좋은 경험이고, 기억이니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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