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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도서] 사라진 마술사 : 시각을 현혹하는 미스디렉션













'시각'이라는 관점에서 문학작품들을 분석했던 학부 마지막 학기 '문학과 사회' 수업 기말보고서. 서평이라기보다는 보고서 느낌이네. 교생, 졸업논문, 알바 잔뜩 + 전공수업 4개에 더해 들었던 핵심교양 허허허허.. 당시 열독하던(?)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하나 골라서 보고서를 썼다. 문제는 교생 끝나자마자 냈어야 했다는.... 복수전공까지 하다보니 졸업논문도 두개, 심지어 주전공은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까지 했는데 그 와중에 5장짜리 보고서 써낸걸 보면 참... 기계였구나 흑흑 ㅠㅜ



2009년 1학기 문학과 사회 기말보고서


시각을 현혹하는 미스디렉션
- 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는 현재
7번째 작품까지 출간된 스릴러 연작이다. 그 첫 작품인 본 컬렉터는 영화화되었고, 이후에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유력 언론사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등, 이 시리즈의 인기는 상당히 높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평가받는 작품, 사라진 마술사를 시각과 연관시켜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링컨 라임은 목 아래로는 왼손 약지를 제외하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신경마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물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범죄학자로서 활동한다. 이런 시리즈상의 기본 설정에 더해, 사라진 마술사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범죄의 트릭은 물론 그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 그리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시각과 관련해 분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아래에서는 그 내용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범죄문학과 시각

본격적인 작품 내용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릴러가 공통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시각과 관련된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스릴러는 범죄가 일어난 이후, 범인을 추적하고 체포하는 과정을 그린 문학이다. 그렇기에 범인이 어떤 인물인지 밝혀내는 과정이 포함된다. , 직접 범인의 범죄 상황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여러 증거물과 정황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파악해가는 것을 스릴러의 핵심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은 노력 끝에 범인의 정체를, 혹은 트릭의 구성을 알아차렸을 때, 수사관들은 과연 어떤 표현을 사용할까? “이제 알겠다!”, 혹은 이해했어!”라는 표현에는 "I understand"도 있지만, 같은 뜻으로 “I see"라는 표현 역시 존재한다. 이 표현은 보는 것아는 것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범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실제로 그 범인의 범죄현장을 눈으로 보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죄문학을 읽으면서 독자가 경험하는 추리와 논증의 과정은 결국 모르던 것을 차차 이해하게 되는 과정, 즉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게다가 범인을 밝혀내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들은 거의 대부분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현장을 관찰하고, 증거물을 분석하고, 실제 범인의 모습을 재구성해 몽타주를 만드는 것 등등 어느 것 하나도 시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요컨대, 범죄문학은 곧 시각과 뗄 수 없는, 시각의 문학인 것이다.


사라진 마술사분석

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에 등장하는 시각과 관련된 내용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관찰과 추론의 과정, 2) 마술기법(미스디렉션), 3) 작가가 의도한 미스디렉션이다.


1)
관찰과 추론의 과정 

링컨 라임은 신경마비 환자이다. 그렇기에 직접 현장에 나갈 수가 없다. 이런 라임을 도와주는 인물이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아멜리아 색스이다. 그녀는 감식반으로 일하며 라임에게 현장의 모습을 상세히 전한다.

등을 땅에 대고 누워있어요. () 손상부위는 교살과 부합되네요. () 손은 구식 수갑 같은 걸로 묶여 있는데,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수갑이에요. 시계는 부서졌고 정확히 오전 8시에 멈춰 있네요. () 출동 경찰 중 한 사람이 목을 두른 줄을 잘랐어요. 매듭은 피했네요

라임의 눈은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현장 수사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실명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현장 수사에 전혀 무의미한 라임의 생물학적 눈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색스이다. 색스는 곧 현장에 나가있는 라임의 시각인 것이다.

시각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감각이다. 현장 관찰이 끝난 후에 라임이 하는 일은 바로 증거물 분석이다. 법과학자답게 라임의 방에는 최첨단 장비들과 그를 돕는 보조원들로 가득하다.

섬유는 두꺼운 가닥이 겹쳐진 모양이었고, 회색을 띠고 있었다. () 라임은 비스코스 레이온도, 고분자 섬유도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사다.

이제 모든 작업은 라임의 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라임은 다시금 스스로의 눈을, 시각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 시각이 바라보는 것은 증거물이라는 퍼즐 조각이다. 퍼즐 조각은 그 조각 하나만을 봐서는 전체의 그림을 알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조각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그 조각들이 모여 나타내는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라임이 지휘하는 범죄수사과정도 이런 퍼즐의 원리와 닮아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지 않은 실(자연사)이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범죄현장의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지만, 그 옆에 변신마술과 관련된 특수 가발이 놓여 있고, 실크가 주로 변신마술에 사용된다는 정보까지 확보한다면, 그 실이 실크일 확률이 높고, 범인은 변신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황이 드러날 수 있다. 증거물 각각에 대한 세부적인 관찰을 넘어, 조금 멀리 떨어져 전체 증거물들을 포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곧 라임이 진행하는 추론의 과정이다.

이렇게 범죄수사의 과정에서 라임의 시각은 3단계의 변화를 거친다. 먼저, 현장관찰을 할 때에는 색스가 곧 라임의 시각으로 기능하며, 두 번째, 증거물을 상세히 관찰하고 분석할 때는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고 라임 스스로 증거물들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모든 증거물들이 들어맞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추론의 단계에서는 각각의 증거물들을 상세히 분석하는 것을 넘어, 모든 증거물들을 포괄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탐색함으로써 범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다른 이의 눈을 빌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눈앞의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그리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각각 다른 방식의 정신활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각의 변화가 곧 사고형태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분석한 내용은 색스가 라임의 시각을 대신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앞 절에서 논했던 범죄문학과 시각에 관한 것과 같다. 하지만 사라진 마술사에는 일반적인 범죄문학보다 시각과 관련된 내용을 훨씬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 눈속임, 즉 마술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마술기법 - ‘미스디렉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복화술, 사라지는 물체, 탈출마술 등 수많은 마술기법들은 거의 대부분이 시각과 관련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기법은 미스디렉션이다.


환상마술사들은 손이 하는 일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사람의 눈을 속여요. () 미스디렉션은 관객의 주의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서 비껴가게 하는 걸 말해요.


미스디렉션은 일차적으로 눈의 감각을 속이는 것이다. 범인은 범죄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미스디렉션을 사용한다. 한 손으로 피해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다른 손으로 피해자의 잔에 약을 타는 것은 전형적인 물리적 미스디렉션, 즉 자신의 행동을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범인은 몇 명의 피해자들을 이 물리적 미스디렉션을 이용해 살해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다 주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물리적 미스디렉션이 아닌 심리적 미스디렉션이다. 라임의 수사에 협조하는 한 마술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범인의 흉계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계획에 말려들어 갈 수 있어요. 제가 보여드렸듯이 범인은 여러분의 의심과 두뇌를 역이용할 거예요. 아니, 범인의 마술이 먹히려면 여러분의 의심과 두뇌가 꼭 필요한 거죠


여기서 미스디렉션은 눈의 감각을 넘어 한 인간의 주의’, 즉 정신 그 자체를 속이는 것을 뜻한다. 이 마술사의 말대로 범인은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이중의 속임수를 장치한다. 수사관들은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몇 증거물들로 인해 범인의 진짜 목적이 처음에 가정된 A가 아니라 B였고, 범인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수사과정 자체가 범인의 의도였고 결국 범인은 A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미스디렉션 때문이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라임이 범인을 검거하는 방법 역시 이런 심리적 미스디렉션의 활용이다


.하지만 화재는내가 직접 봤어!”
이 친구는 화재를 봤어. 그래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
화재는 진짜가 아니었어” (
환상이었지. 모두 환상이었어 움직이지 않는 사나이가 연출한 약간의 정신마술이랄까


범인이 라임을 살해하기 위해 자신이 일으킨 화재가 성공적이었다고 믿는 근거는 자신의 눈으로 화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화재 자체가 범인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라임의 물리적 미스디렉션인 동시에, 범인이 자신의 범죄가 성공적이었다고 믿도록 만드는 심리적 미스디렉션이었다.

결국 미스디렉션이 시각을 현혹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의 시각이란, 우리의 망막에 비치는 물리적 대상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 주의, 사고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등장인물들 서로간의 미스디렉션이 거듭되는 사라진 마술사는 이런 생각을 매우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작가가 의도한 미스디렉션

내용뿐만이 아니라
, 소설의 기법 측면에서도 사라진 마술사를 분석해볼 수 있다. 사건 전개상의 반전을 넘어 후반부에 또 다시 반전이 나오는 이 작품의 구조는 다른 차원에서의 미스디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디렉션. 독자의 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끌다가 막판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의 묘미가 마술의 핵심이라면 제프리 디버만한 마술사가 어디 있을까. 실제로 이번 책 사라진 마술사는 반전의 대가라는 디버 작품 중에서도 특히 현란할 정도로 반전이 거듭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범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범인과 라임이 의도한 미스디렉션에 따라 놀라기를 거듭한다. 하지만 범죄의 전모가 모두 밝혀지고 범인이 검거되는 순간, 작가에 의해 장치된 또 하나의 반전이 드러난다. 실제 범인은 수사 과정을 통해 경찰이 추적해 온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디버는 독자들의 시선을 범죄 자체의 현란한 수법에만 집중하게 한 뒤에, 범인의 정체에 또 하나의 반전을 심어놓음으로써 성공적으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

즘 어느 장르의 문학작품에서나 뒤통수를 치는반전이라는 것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를 외치며, 작가의 치밀한 수법에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반전의 기법 역시 사실은 독자들의 시선과 주의를 다른 쪽으로 끌어간다는 점에서 마술의 심리적 미스디렉션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를 시각과 관련지어 분석해보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각과 관련된 내용은 어느 범죄 문학에서나 볼 수 있는 범죄의 수사과정에서 나타나는 관찰과 추론에 대한 것, 특별히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스디렉션이라는 기법과 관련된 것,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구성함에 있어서 사용한 미스디렉션, 즉 마지막 부분의 반전과 관련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작품의 분석을 통해 시각이 곧 우리의 사고와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선은 곧 우리의 정신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뜻하기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은 우리의 정신, 주의 자체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에서 범인이 사용한 트릭, 범인의 검거 과정에서 라임이 사용한 함정, 그리고 작가가 마지막에 심어놓은 반전의 장치는 모두 이런 시선 돌리기’, 즉 미스디렉션의 일종이었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라임의 시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시각의 변화가 곧 사고형태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사실 시각과 사고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기초해 어떤 판단을 내리곤 하며, 바라봄/바라보지 않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대상에 대한 호오를 나타내기도 한다. ‘내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표현에는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몸이 1000냥이라면 눈이 바로 900냥이라는 우리 옛말에는, 시각이 이렇게 우리의 정신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이 담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