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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잉여의교육학

이제는 게임이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













<교육공동체 벗>에서 내는 격월간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 (2013년 3,4월호)에 기고한 글


TED 영상 문제로 모바일 페이지에서는 본문 일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게임이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 <누구나 게임을 한다Reality is Broken>


 

           



지난 2012, 한국 사회를 휩쓴 열풍을 꼽아보라면 아마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애니팡의 형식은 알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고전에 가깝다. 하지만 그 이전의 유사한 게임들과 달리, 애니팡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국민메신저로 등극한 카카오톡과 연동한 덕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출시된 지 40일 만에 이용자가 1000만을 넘어섰고, 74일 만에 2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고 하니 두 달여 사이에 국민 40퍼센트가 즐기는 대중적인 게임이 된 셈이다. 또한 애니팡의 성공에는 못 미치지만 뒤를 이은 드래곤플라이트, 다함께차차차, 윈드러너 등 카카오톡 플랫폼을 활용한 게임들의 선전은 이제 게임이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애니팡 열풍을 근거로 한국 사회가 게임 친화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게임중독을 방지하겠다는 명분 아래 셧다운제를 비롯해 다른 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후질대로 후진게임 산업 규제방안이 자연스럽게 논의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2년 전에는 놀이미디어교육센터의 소장이라는 사람이 "지금 (한국의) 교실에는 게임 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 상태가 짐승 같은 아이들이 있다."며 소위 짐승뇌 이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이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게임 뇌의 공포><뇌내 오염> 이라는 저서가 연구의 정당성, 근거, 객관성 등의 문제로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언론을 통해 인터넷/게임 중독자들에 의한 선정적인 형사 사건의 사례들이 계속 알려지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들이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수많은 문화콘텐츠들 중에 유독 게임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이 많은 것은 게임이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굳이 인간의 모든 활동이 생산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르지만 알고보면 게임이 꼭 비생산적인 것도 아니다. 2012년에 출간된 <누구나 게임을 한다Reality is Broken>게임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아이디어를  제기하는 저서이다.

 


게임이 세상을 바꾼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는 게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도 포함되어 있지만, 핵심은 게임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다행히 이를 이해하기 위해 5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전부 읽어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저자인 제인 맥고니걸의 TED 강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일주일에 30억 시간을 온라인 게임에 소비합니다몇몇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게임에 써버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인데." 그럴지도 모릅니다실제 세상에서 풀어야 할 긴급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요그런데 제가 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우리는 게임에 오히려 너무 적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 우리가 기아와 빈곤, 기후변화국제 갈등, 비만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다가올 10년의 마지막까지 적어도 매주 210억 시간 동안 게임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마 상식적인사람이라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지금보다 7배의 게임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농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제인 맥고니걸은 정말 진지하다I’m serious.이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근거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현실보다 게임 세상 안에 있을 때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이머가 게임 세상 안에서 영웅이 된다거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도 일부 포함하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는 우리가 게임 세상에 있을 때 스스로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주저함 없이 남을 도우려 하고끈기 있게 문제에 집중하고실패해도 일어나 다시 시도합니다그런데 현실에서 실패에 직면하고장애물에 맞설 때는 그렇지 못하죠압도당하고쩔쩔매고불안이나 우울, 당혹, 비관을 느끼죠게임을 할 때 이런 느낌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타인과의 협동심, 문제에 대한 집중력, 좌절하지 않는 강인함 등등, 지금 이게 게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의심될 정도로 바람직한단어들이다. 게임과 담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실제로 게임을 통해 이런 역량을 기를 수 있다. 제인 맥고니걸이 예로 들고 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세상에는 25명의 게이머가 동시에 플레이하는 공격대모드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격대 '파라곤'의 25인 협력 플레이 영상


공격대 안에서 게이머들은 상황에 따라 각자 맡을 역할을 정하고, 그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해야 한다. 혹시 누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25명 전체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도 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공격대에 참여하는 게이머에게는 고도의 집중이 요구되며 심지어 잠깐 전화를 받는 것도 어려울 때가 있다(이는 많은 커플들에게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 대세는 롤이네요



하지만 바로 그 몰입의 상태에서 게이머들의 집중력, 협동심, 판단능력 등이 고도로 향상될 수 있다.

 


우리가 게임을 통해 배우는 것

 

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해서 뭐하는지, 25명의 협력이 대체 무슨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게임 내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면 쓸 데가 있냐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25명의 역량이 집결되어 생산되는결과물이 아니라, 바로 그 과정에서 25명의 게이머들이 각자 학습하고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을 통해 게이머들이 대가virtuoso’가 될 수 있는 것, 즉 게이머들이 아주 잘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네 가지 제시한다. 이는 게임 플레이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게이머들이 어떤 성취를 함으로써 게임에서 쓰는 아이템/화폐를 얻거나, 프로게이머들이 급여를 받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성취를 의미한다.


첫째, 게이머들은 즉시적 낙관주의를 익힐 수 있다. 즉시적 낙관주의란 어떤 문제를 꼭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태도를 말한다. 게임은 성공이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때로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실패 역시 영구적인 좌절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남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누군가와 함께 놀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특히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공격대 모드처럼 게이머들이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조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관계망을 형성하는 방법을 익히기가 더 용이할 수 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유통되는 소셜 게임들을 보면, 게임이 기존의 인간관계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행복한 생산성이다. 게이머들은 시간이 나면 다른 여가활동이 아닌 게임을 택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활동보다 게임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생산성은 게임에서 제시하는 일과 그에 대한 보상이 적절할 때 큰 효과를 발휘한다. , 좋은 게임은 게이머들로 하여금 계속 일을 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웅대한epic 의미이다. 게이머들은 세계의 구원과 같은 커다란의미에 열광한다. 그리고 그런 열광의 에너지는 때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생산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제인 맥고니걸이 TED 강연을 녹화한 20102월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두 번째로 큰 위키는 8만개의 정보를 담고 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위키였으며 2013년 3월 현재 페이지는 98300개를 넘기고 있다.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모아 웅대한 지식의 보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게이머들은 분명히 잘하는것들이 있다. 이제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저자의 고민은 게이머들의 역량을 어떻게 하면 가상세계 바깥으로 끌어내 진짜 현실reality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로 이어진다.

 

게이머들은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많은 걸 이룰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보다 게임 속에서 더 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고더 좋은 피드백과 보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래서 게이머들이 현실보다 가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타당하다고 하는 거죠저도 그게 합리적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하지만 어떻게 봐도 최선의 상황은 아니죠우리는 현실을 더 게임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고민의 맥락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게임이 몇 가지 등장한다. 그 중 하나인 석유 없는 세계World with out oil(2007)’는 게이머들에게 석유가 떨어진 세계라는 상황을 주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을 3년간 추적한 결과, 놀랍게도 대부분이 게임에서 익힌 생활습관을 유지했다고 한다. 공익광고를 몇 십번 보는 것보다, 게임을 통해 상황에 몰입하고, 또한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현실을 바꾸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런 실험의 결과가 놀랍기는 하지만, 나는 '현실 바꾸기'류의 게임에서 꼭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게이머들이 분명히 게임 안에서 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 성장과정에서 쌓은 역량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이미 게임의 교육적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국어나 수학과 같은 교과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꼭 그 교과의 내용 자체가 그대로 나중에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 교과를 공부함으로써 키우는 역량, 그 성장의 가능성에 교육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라고 다르라는 법은 없다.


최근에는 교육연구에 있어서도 학습자의 동기에 관심이 모이다 보니,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게임을 통한 학습, ‘g-learning’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이유가 현실에 도움이 되는특정한 역량을 발달시키기 위해서여서는 재미가 없지 않을까? 게임은 성적이나 업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재미있으니까 할 때 가장 몰입하게 된다


출처: 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211702&category=106&subcategory=2


그리고 그 몰입의 상태에서 게이머들의 학습과 성장이 이뤄진다. 지금 단계에서 게임과 관련해 교육과 학습, 성장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임 안에 의도된 결과(천자문 습득이라든지)를 설정할 것이 아니라 대체 게이머들이 그냥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또 익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망가진 현실을 바꾸는 상상력

 

개인적으로는 굳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게이머들이 해결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게임에 접근하는 방식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곱씹어볼만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저자와 동료들은 1) 게임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2)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3) 그 역량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파악한 뒤, 4) 이를 토대로 실제 게이머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해왔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점은 게이머들의 역량을 가상세계에서 키운 것이라 하여 현실에서 무용한 것이라고 낙인찍지 않고, 거꾸로 게이머들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실의 조건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인식의 전환이다.


이런 전환에는 상상력이 요구된다, 게임은 나쁜 것이고 게임 플레이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경험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게임을 못하게 하거나 줄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누구나 게임을 한다>는 게임 플레이가 꼭 소모적이지도 비생산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 경험학습론experiential learning무형식학습informal learning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굳이 게임이 아니어도 본질적으로 비/교육적인 경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경험이든 학습과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있다. 교육이 꼭 특정한 교과의 논리와 내용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적 만남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 성장에 필요한 콘텐츠를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확장해야 한다. 지배적인 교육담론 안에서 어떤 콘텐츠(예컨대 기존 교과)는 교육적이기에 권장하고, 다른 콘텐츠(예컨대 게임)는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 다양한 경험이 학습자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방법이 굳이 게임을 해서 이런 능력을 함양하자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는 게임이 가지는 형식 안에서 어떤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원 트윗 출처: @MickeyJY 

 

게임에서의 실패는 현실에서의 실패와 다르다. 당연히 가상과 현실의 무게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그 차이가 게임을 비현실적이고 따라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패가 좌절이지 않은 게임의 상황이 한 번의 실패가 심각한 추락을 의미하는 현실보다 더 아름답다면 우리는 현실을 게임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 게임의 부정적인 효과만 요란하게 보인다 하여 게임을 금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식한 일이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말하듯, 게이머들이 현실이 아닌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이유는 그/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이 그만큼 망가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망가진 현실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꼭 게임 자체라기보다는 게임을 통해 확장될 수 있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많은 매체들 중에서도 게임의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더 드러날 수 있는 미개척의 영역이다이제, 세상을 바꾸는 게임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