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고/잉여의교육학

무한도전의 혁신, 혁신학교의 도전













무한도전의 혁신, 혁신학교의 도전

 

 


다른 글에서도 다뤘지만,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예능프로그램의 지평을 확장하며 계속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매 주 도전/특집'이라는 형식성 덕분이다. 김태 PD 역시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에 실린 인터뷰에서무한도전의 역사는 시스템 바꾸기의 역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은 도전을 바로 언급하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역사는 한마디로 시스템 바꾸기의 역사다. 초창기 <무모한 도전> 시절, 촬영 현장의 재밌는 분위기가 방송에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걸 고민하게 됐다. 붐 마이크 1, 카메라 2대로 6명의 작은 소리와 디테일한 움직임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기존의 시스템을 답습하던 제작진 잘못이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야외 버라이어티에 집단 카메라 시스템을 도입했고, 각자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7명의 목소리를 분리해서 담을 음향 팀도 현장에 나오게 했다. (205~206p)

 

컨텐츠가 무엇이다, 혹은 목적이 무엇이다를 얘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컨텐츠/목적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카메라를 세 배 이상 늘리고, 음향을 7개로 분리해서 잡는 것은 (지금이야 보편적이지만) <무모한 도전>이 방송되던 7년 전의 예능프로그램 제작환경에서는 프로그램 이름만큼이나 무모한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새로운 시스템들은 컨텐츠 기본 소스를 풍부하게 했고, 각 멤버들의 캐릭터 생성에 더 큰 원동력이 되기 충분했다. (...) 사람들은 캐릭터의 발전이 있을 때 좋아하고 환호한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걸리고, 길면 2년 걸린다. (...) 매주 다른 특집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7명의 캐릭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6p)

 

이렇게 새로운 시스템에 의해 매회 도전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바로 캐릭터이다. 2010년 초에 방영된 죄와 길특집에서 잘 드러나듯 예능프로그램에서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김제동의 멘트가 웃펐던 장면


한 예로 노홍철은 퀵마우스로 출발해 +아이이자 소녀들의 대통령으로 자리를 잡았고 언제부턴가 사기꾼이었으며 요즘은 빡구로 활약한다. 이 각각의 명명naming은 평소에는 잠재해 있다가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전경에 등장해 그 배경맥락을 풀어내고, 웃음/감동을 유발한다. <무한도전>은 두 개의 시선을 일곱 개로 늘리면서 자칫 놓치기 쉬운 연기자의 반응이나 멘트들을 포착해냈고 그 덕분에 풍부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무한도전> 특유의 자막시스템 역시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황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의 변화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 즉 철저히 목적에 부합하는 시스템의 개혁이다. 굳이 예능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든지 뭔가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개혁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그 이념을 담아내기에 부족한 시스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도전, 혁신학교

 

이와 관련해, 2012년 9, 10월호 <오늘의 교육>에서 다뤘던 혁신학교운동의 사례는 곱씹어볼만 하다. 혁신학교는 많은 부분 <무한도전>과 닮아있다. 이름부터 산업정보고외국어고등학교처럼 특정한 교육과정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그 자체를 내세우고 있다. <무한도전>이 기존 예능프로그램의 생태계에서 유지되던 문법을 깨뜨렸듯이, 혁신학교는 기존에 통용되던 일반적인 학교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희망'


이혁규 선생님의 글에 잘 나타나있듯 혁신학교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학교개혁운동의 기나긴 역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기존의 개혁운동이 교실 단위 개혁에 집중하며 직면했던 한계를 학교 단위의 개혁 전략으로 돌파하려 하는 것은 혁신학교운동의 주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정용주 선생님의 글에서 드러나듯 혁신학교운동을 떠받치는 시스템에 대한 성찰은 학교 단위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 전반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입시, 경쟁 중심의 풍토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교육/학교의 문제는 단위 학교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나는 혁신학교운동의 성과로 제시되는 것들 - 행정업무를 줄여 교재 및 수업연구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늘린다거나, ‘배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실의 구조, 학생 평가에 대한 정상화 등등을 볼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수업이 혁신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 ‘수업하기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이다. 하지만 정용주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기존에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하는 것들이다. <무한도전>에 비유하자면 학교가 수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예능은 웃겨야 된다정도라 할 수 있다. 도전이나 개혁이라기보다는 기본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의 엄혹한 현실에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것들을 실현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 다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너머까지를 바라보는 상상력이다.

 


혁신학교의 무한도전을 위해

 

지금 우리 사회가 혁신학교운동을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문제가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학교가 지금의 혁신학교와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 시절이 온다면 아마도 혁신이라는 수사는 의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혁신학교의 도전이 마무리될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개혁에 완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정용주 선생님은 조희연 교수의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혁신학교운동이 지금의 가시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의 도전은 지금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무한히 이어지는 도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수많은 예능프로그램들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애초에 <무한도전>이 시도했던 시스템의 변화는 현장의 재밌는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즉 예능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 덕분에 <무한도전>은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예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예능프로그램 전반의 형식과 내용을 풍부하게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마찬가지로 혁신학교의 혁신은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답답한 지금의 학교 구조에 대한 개혁에서 출발했지만, 앞으로는 학교의 기능/역할에 대해,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교육 전반에 대해 새로운 의제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논의를 제기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이 혁신의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무한도전>이 매주 다른 포맷을 시도하면서도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방송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확고한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실험해 온 모든 과정들을 프로그램 형식으로 끌어안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형식이나 내용을 다변화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로 다시 수렴하는 캐릭터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77p)

 

김태호 PD 역시 매주 다른 특집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7명의 캐릭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며 캐릭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앞으로 혁신학교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시스템의 변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좌초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한도전>의 캐릭터와 같은 중심이 필요하다.


앞서 간략히 풀어냈듯이, <무한도전>의 캐릭터는 연기자들이 품고 있는 서사에 부여된 의미이다. <무한도전>이 촬영장의 카메라를 세 배로 늘렸듯이, 우리가 어떤 대상의 의미를 풍부하게 잡아내기 위해서는 자세히, 면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혁신학교운동의 의미를 보다 섬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혁신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카메라를 늘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담고 있는 의미를 탐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얘기긴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교사들이 노력할 수 있는 학교와 같이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구체적인 기술description이나 설명이 더 필요하다. 혁신학교가 바꾸고 있는 학교의 풍경을 학생, 교사, 연구자, 행정가들이 각자의 차원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기록하고, 또 공유해야 한다.


이 중에 특히 공유와 관련해 덧붙일 것이 있다. <무한도전>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바로 상호주관성이다. 누가 봐도 웃긴 채플린식 몸 개그와는 달리 <무한도전>의 캐릭터를 통해 유발되는 상황은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을 수도 있다. <무한도전>에서 각 연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연기자와 제작자, 시청자가 상호주관적으로 형성해온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한도전>은 캐릭터 형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프로그램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프로그램의 진화에 동참하게 만든다(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성장과 진화 <무한도전>)


딱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나는 혁신학교운동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상호주관적 의미의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혁신학교 안에서 복작대며 일어나는 일들, 그 변화들이 가지는 의미는 반드시 학교 안팎의 주체들에 의해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혁신학교운동은 글쎄, 외부인 입장에서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다소 폐쇄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 쪽에서는 혁신학교를 향한 공격이 거세고, 다른 쪽에서는 혁신학교는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보내니, 외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혁신학교운동이 학교의 담장을 경계로 닫힌 텍스트가 되어버린다면, 즉 오로지 교사들이나 행정가들만의 것이 된다면, 무한한 도전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열린 텍스트가 아닌, 다시 말해, 캐릭터와 시청자 참여가 배제된 <무한도전>을 상상해보시라). 혁신학교운동은 학교의 담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혁신학교의 성과가 사회 전체의 성과로 쌓일 수 있는 것은 물론, 혁신학교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와 제언도 보다 엄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호 PD는 인터뷰 말미에서 <무한도전>을 통해 가능성을 열어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한다. <무한도전>이 이어온 시스템 바꾸기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혁신학교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에서는 겨우 운만 떼었지만 사실 혁신학교운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운동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방식의 개혁을 시도하다 보면, 한두 번 정도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기꺼이 다음을 기다려 줄 용의가 있다바로 그러한 도전을 위해 만든 것이 혁신학교 아니던가.



김어준을 인용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