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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논문] 선행학습경험의 인정














2012년 봄학기 성인학습이론연구 리뷰페이퍼

 

Leesa Wheelahan. Vocations, 'graduatedness' and the recognition of prior learning. (2006). In P. Anderson & J. Harris (Eds). Re-theorising the recognition of prior learning(pp. 241-260). Leicester, UK: NIACE


Helen Pokomy. Recognising prior learning: what do we know?. (2006). In P. Anderson & J. Harris (Eds). Re-theorising the recognition of prior learning(pp. 261-281). Leicester, UK: NIACE


Susan Whittaker, Ruth Whittaker and Paula Cleary. Understanding the transformative dimension of RPL. (2006). In P. Anderson & J. Harris (Eds). Re-theorising the recognition of prior learning(pp. 301-319). Leicester, UK: NIACE




선행학습경험의 인정



경험학습인증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 하나는 학습자들의 선행학습, 그 중에서도 형식교육체계에서 자격증이나 학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습경험을 가시화하고 평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논문들은  주로 학습자들이 가진 다양한 배경, 맥락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자료를 읽으면서 경험학습인증이 지식경제사회에서 노동시장(economy)의 요구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존재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정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대학으로 대표되는 형식교육중심성이 유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샬롯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업무와 관련된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짝에 쓸모없는 시간 낭비로 여겨질 수 있는 이론적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거나, 아무래도 형식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이 유리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경험학습인증 방식이 구성되어있다거나 하는 상황을 보면, 형식교육 바깥에서의 선행 경험을 인정한다는 취지가 무색하지는 않은지 의문이 든다. 하필 실무역량을 갖추고 이론적 베이스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사례를 인용한 건지, 아니면 원래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거꾸로 이론에는 빠삭해도 실무적으로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행학습경험을 인정하는 제도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경험학습인증체제가 아주 구체적이고, 파편화된 실무 능력을 넘어서 경력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통합적인관점이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떠올려보면 복잡한 인정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경험학습인증체제는 등급이 나오는 외국어 시험이나 기술 자격증과는 달리 좀 더 복합적인 역량을 측정하는, 혹은 학습자의 학습경험을 평가해 앞으로의 학습을 조직해주는, 그래서 굉장히 복잡하고 거대한 제도라는 일종의 이미지가 형성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 접했던 경험학습인증체제를 둘러싼 논의를 돌이켜보면, 경험학습인증체제도 어떤 맥락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그것을 과연 경험학습인증체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서 부르는 것이 적합한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험학습인증이 어떤 맥락에서 요구되고 있는지 - 고등교육 진입 경로를 다양화하기 위한 평가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고등교육 수준에서의 학습경험을 학점수준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기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인증하기 위한 것인지, 아예 다른 관점에서(developmental model) 평생학습을 촉진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필요한 것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모든 요구를 하나의 인증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포트폴리오든 면담이든 시험이든 그 제도를 관리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평가주체, 즉 선행학습경험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전문가 집단의 구성 자체가 제도의 목적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 논문들에서는 정교한 인증을 위해 포트폴리오보다 면담이 낫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것도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수 있다.

경험학습인증이 이렇게 서로 성격이 다를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통합시켜놓은 무언가에 대한 이름 붙이기(naming)라면, 나는 오히려 이것을 그냥 교육제도라는 큰 틀에서 불러야 한다고 본다(마치 복지제도처럼). 형식교육과의 구별도 굉장히 애매한 상황에서 경험학습인증이 결국 학습자들의 전환transformation’에 관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교육제도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그리고 위 논문들과 별개로 경험학습인증과 관련된 논의를 쭉 따라오며 들었던 생각은 경험학습인증이 그 취지가 좋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의 토양에서는 인증과 평가의 과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가주체 입장에서 일일이 관리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과 역량의 범람은 결국 표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 표준화 과정에서 학습자가 가진 풍부한 경험의 맥락은 삭제되고 해외여행’, ‘봉사활동’, ‘XX자격증과 같은 한 줄 짜리 스펙만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이는 우리가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충분히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닫힌 체계로서 제도의 구성이 아니라 열린 체계로서 문화적 실천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