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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논문] 성인학습, 평생학습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도구













2012년 봄학기 성인학습이론연구 리뷰페이퍼

 

Kang, D. J. (2007). Rhizoactivity: Toward a postmodern theory of lifelong learning. Adult Education Quarterly,57(3), 205-220. 


성태제 외. (2012). 최신교육학개론 (2). 서울학지사. 12.


Lakoff, G., Johnson, M., 노양진·나익주 옮김. (2006). 삶으로서의 은유 (수정판). 서울박이정. Ch. 1-4(pp. 21-52)




성인학습, 평생학습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도구



이 논문들에는 우리가 학습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은유metaphor. LakoffJohnson(2006)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개념체계 대부분이 은유적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특정한 현상, 인간 활동을 은유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이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은 호수라는 은유는 마음호수의 공통점을 통해 우리에게 마음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지만, 거꾸로 마음에 있어 호수와 큰 연관이 없는 부분은 가리게 된다. “은유는 우리에게 부분적 이해를 제공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개념의 다른 측면을 은폐한다.


학습에 관해 제시된 습득, 참여, 창조라는 세 가지 은유도 마찬가지이다. 습득 은유, 참여 은유, 창조 은유는 각각 학습의 서로 다른 측면을 드러내고, 어떤 측면들은 은폐한다. 습득 은유로는 공동체 차원에서 이뤄지는 학습의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참여 은유로는 개인의 지식/기술 획득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창조 은유는 학습의 결과가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여주고 있지만, 과정보다 결과에 보다 주목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은유들은 모두 학습이 전생애/전사회에 걸쳐서 이뤄지는 활동이라는 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평생학습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강대중, 2012). 평생은 인간의 삶자체를 의미한다. 우리가 인간의 전생애에 걸쳐이뤄지는 학습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평생학습이라는 관점은 빼놓을 수 없는 렌즈가 될 것이다. 그런데 평생’, 이 습득/참여/창조와 같은 차원에서 은유로 이해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습득이 학습의 은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물건이나 재산을 습득하는 과정과 학습의 과정이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참여와 창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은 습득이나 참여, 창조처럼 약간 모호하면서도 또 적당히 구체적인 과정이나 결과를 지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나는 삶과 학습의 구조가 어떤 측면에서 유사하다기 보다는 학습이 이뤄지는 장field으로서 우리의 삶을 마주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평생학습은 은유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


두 번째는 이론theory이다. 학습이라는 현상을 이론화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 시도의 결과로 경험학습론experiential learning, 상황학습론situated learning, 관점전환학습론transformative learning 등 많은 학습이론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이론을 통해 우리는 실재를 구성할 수 있는 렌즈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런 이론들이 가진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많은 학습이론들은 앞서 살펴봤듯 형용사+학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학습앞에 붙은 형용사들은 각각 학습의 기초/뿌리를 찾고자 하는 시도이지만, 특정한 관점에 따라 결국에는 이분법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Kang, 2007). 이론의 한계는 실재에 대한 왜곡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기존에 구성된 이론의 의미를 살려가는 동시에, 보다 엄밀하게 학습활동의 지형을 그려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구가 요청된다.


그 도구가 바로 세 번째 방식인 Rhizoactivity(Kang, 2007)이다. Rhizoactivity는 사회(세계)와 개인이라는 이분법 사이에 있는 활동activity을 분석 단위로 바라본다. 이는 Rhizoactivity가 습득이나 참여, 혹은 관점전환학습이론과 같이 구체적인 개인의 학습경험이나 공동체/집단의 학습장면을 통해 학습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Rhizoactivity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불완전하고, 무정형으로 펼쳐지는 학습 활동이 마치 뿌리줄기rhizome처럼 수많은 마디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포착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라 할 수 있다. Rhizoactivity는 학습 이론과 학습 은유의 지형도가 되는 것이다.


나는 Rhizoactivity가 다양성, 불확실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기존에 학습이라는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된 은유와 이론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한계를 모두 수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고 생각한다. 은유가 대상의 특정한 측면을 드러내고 다른 측면을 가리는 것처럼, 형용사로 표현되는 학습이론들 역시 그 형용사 때문에 한계에 빠지는 동시에 바로 그 형용사를 통해 드러나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Rhizoactivity는 습득이면서 참여이고 또한 창조이기도 한, 또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이뤄지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기도 하는 학습 활동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보다 엄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