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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논문] 성공적인 삶과 이행기의 역할













2011 가을학기 평생학습과 생애경로 리뷰페이퍼

 

Lawrence, J. (2009). Two conceptual models for facilitating learners' transitions to new post-school learning contexts. In J. Field, J. Gallacher & R. Ingram (Eds.), Researching transitions in lifelong learning (pp. 106-120). London ; New York: Routledge.


Satchwell, C., & Ivanic, R. (2010). Reading and writing the self as a college student: Fluidity and ambivalence across contexts. In K. Ecclestone, G. Biesta & M. Hughes (Eds.), Transitions and learning through the lifecourse (pp. 47-68). London ; New York: Routledge.


Quinn, J. (2010). Rethinking 'failed transitions' to higher education. In K. Ecclestone, G. Biesta & M. Hughes (Eds.), Transitions and learning through the lifecourse (pp. 118-129). London ; New York: Routledge.



성공적인 삶과 이행기의 역할



<Reading and writing the self as a college student>에는 같은 교육과정을 다르게 경험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도구로 ‘logbook’이 등장한다. ‘logbook’은 학습/교육이 이뤄지는 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제도, 혹은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logbook’을 중심으로 같은 공동체 안에서, 공통된 제도를 두고도 학습자들이 서로 다른 학습/이행 경험을 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학습자가 아니라, ‘logbook’이라는 제도를 만든 사람, 즉 교육환경을 구성한 사람에게도 어떤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공동체에서 특정한 목적으로 교육제도/장치를 구성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학습자에게 기능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어떤 제도/장치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실천을 한 사람이 더 성공적으로 학습한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럴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구성원이 공동체에 들어온다면, 그 구성원과 함께 합류하는 새로운 맥락에 의해 애초에 교육제도/장치를 구성할 때 고려하지 못한 예외사항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체의 학습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Two conceptual models for facilitating learners' transitions to new post-school learning contexts>‘Transition Practices’ 모델에서 제안하는 실천들을 통해 끊임없이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교육장치/제도를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요즘은 특히 대학원이라는 학문 공동체 안에서 그런 제도/장치들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고민이 된다). 이 모델은 주로 이행과 관련된 경우를 다루고 있지만, Quinn의 주장대로 이행이 상급학교로의 진학, 취직, 이직 등과 같이 어떤 기관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것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속에서 항상 일어나는 것이라면, ‘Transition Practices’ 모델에 등장하는 실천들 역시 항상 이뤄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Rethinking 'failed transitions' to higher education>에서는 실패한 이행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행transition’을 이해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대학의 중퇴라는 사례가 거론되다 보니, 자연스레 얼마 전 서울대를 자퇴한 공현 생각이 났다. 공현은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했고, 대학에 온 이후로도 계속 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기 때문에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강의실에 나와서 별로 중요하지 않을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또한 자신의 양심에 반해 총을 들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병역거부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공현은 한국사회에서 비장애인/입시에 성공한/남성에게 기대하는 일반적인 생애경로의 어느 것도 따라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공현의 자퇴소견서에 달린 서울대생들의 댓글을 보면 실패자가 될거다라거나 후회할거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자신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테마가 있고, 그 활동 안에서 자기 위치와 할 일을 꾸준히 찾아나가는 것을 보면,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20대들보다 훨씬 안정적인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공현의 삶을 보고 있으면 상급학교로의 진학, 취직, 군대 경험과 같이 일반적으로 이행이라고 일컬어지는 제도/기관들 사이의 이동에 따른 단절/충격보다는 연속적인 삶의 경험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이행이 어떤 커다란 환경의 변화에 따라(A B) 자신의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이라면(a b), 이 사람에게 그런 변화의 시기가 과연 언제일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a에서 b가 되더라도, 그 과정은 딱 어느 순간, 혹은 며칠, 몇 주일, 몇 달이라는 이행기를 상정해서 이제 이때부터는 확실히 a가 아니고 b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 그리고 그 가치에 의한 판단 등 우리의 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경험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재생산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Quinn“lost in transi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