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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도서] 장르화, 삶의 이야기 -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을 읽고














2005년 봄학기 서양의문화적전통 비평






장르화, 삶의 이야기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을 읽고



한 텍스트에 대한 생각/평가는 처음 그것을 접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변하기 마련이다.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발표를 들었을 때와, 책을 읽는 와중, 그리고 수업을 듣고 정리하는 지금의 생각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그 변화를 살펴보면서 대체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거부감


처음에 책을 읽지 않은 채로 일상예찬발표를 들었을 때에는 거부감이 심했다. 발표의 형식이나 전체적인 흐름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성에 대한 관점 때문이었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를 들었기 때문에, 여성과 가정적 미덕이라는 것에 대한 해설이 대체 발표자들의 생각인지, 토도로프의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나중에 책을 읽으면서 확인해보니 토도로프의 생각이었으며 그것이 나의 거부감의 원인이었다.


토도르프는 청결, 어머니상 등을 가정적 미덕이라고 규정하며 바로 그 가정적인 미덕이 가정 외부에서의 성공에 불가피한 악덕을 보상해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 안에서만 힘을 가지고, 외부의 공적인 공간에서는 억압받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는 미덕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그것이 좋은 것인 양 가장하면서 억압을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도로프가 예를 들고 있는 여러 그림들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수동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여성은 앉아 있고. 남성은 서 있는 그림이 많으며, 반대의 경우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접대하는 식인 경우가 많았다. 또한 편지를 쓰는 그림보단 읽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정 일을 하고 있는 그림이 많은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미덕이네, 보상이네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정말 어떻게 이렇게까지 억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나를 놀랍게 할 뿐이다.



혼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거부감엔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이 그림들을 여성 억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은가? 물론 나는 텍스트에서 내가 무언가를 읽어냈다면, 저자의 의도를 떠나서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비판은 핀트가 어긋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것은 일상성이라는 테제였다. 네덜란드의 장르화는 바로 그 시대, 그 사회의 일상성을 표현한 예술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과 텍스트에 대한 접근은 바로 그 일상성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여성억압이 당연시되었던(그래서 억압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네덜란드 사회의, 그리고 실제로 가정적 미덕들이 칭송받았던 네덜란드 사회의 일상의 모습들을 그려낸 이 장르화를, 그리고 토도로프의 해석을 여성 억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긍정


물론 난 충분히 가능하긴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내가 볼 때에는, 확대해석이 될 확률이 높다. 여성 이외의 소재들 역시 장르화에 활용된 것을 볼 때에, 장르화 자체가 일상을 다룬 것이라는 토도로프의 해석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거시적인 측면, 일상성의 측면에서 장르화에 접근해야지, 그 장르화의 일부에 나타난 여성억압을 소재로 접근하면 자칫 어긋난 해석이 나오기 쉽다는 것이다.


일단 가치판단이 배제된 상태에서 일상의모습을 예술의 소재로 활용한 것. 그것만으로도 장르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르화는 뭔가 아늑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바로 우리 주변의 모습, 삶 자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와 17세기 네덜란드의 삶의 모습이 같다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습 - 가정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낭만적 사랑을 나누는 등 - 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 그래서 뭔가 특별함이 없어서인지 예술의 소재로 잘 활용되지는 않는 삶 그 자체 - 더욱 가치 있다.


특별한 사건, 정말 뛰어난 미모를 가진 모델, 종교화처럼 뭔가 우리의 일상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것들이 주목받기 보다는, 그냥 정말 무료할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 자체가 주목받는 것. 어쩌면 그것이 훨씬 바람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생을 열심히,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일상예찬에 나타난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민중가요와 닮아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천편일률적인 사랑 이야기, 정말 내 이야기 같지 않은 판타지 일색의 가사에 세련된 선율이 붙은 대중가요와는 달리, 투박하지만 민중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민중가요. 비록 예전엔 운동권의 전유물로 분류되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대학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민중가요가, 특별하지 않은 그냥 우리의 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 장르화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 대한 조명. 그것이 장르화고, 민중가요이며 어쩌면 다른 이가 만들어놓은 판타지 일색의 사회 - 과연 우리 자신의 일상의 삶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꼭 필요한 예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