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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영화] 자유, 사랑, 행복, 그 아름다운 노래 - 영화 《Hair》를 보고













2005년 봄학기 대중예술의이해 감상문





자유, 사랑, 행복, 그 아름다운 노래

영화 《Hair》를 보고




히피문화는 '과거'의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확실히 과거의 것이다. 지금 '히피'와 관련되어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히피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패션 트렌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피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 Hair역시 79년에 나온, 즉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나온 매우 '오래된' 영화이다. 하지만 이 유쾌한 영화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과, 그리고 주인공들과 교감하는 것은 '현재의 나'이며, 그 교감을 통해 그들은 2005년의 지구에서 다시 숨 쉬고 노래하게 된다. 영화 Hair는 케케묵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생동하는 현재의 노래인 것이다. 



ridiculous & crazy


히피들은 '탈사회적'이다. 따라서 '철저히 사회화된 이들'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면, 그들은 엉뚱하고, 때에 따라선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마약을 하고, 격식 따윈 생각지 않고 남의 파티에 '난입'해서 소동을 피우고, 항상 '즉흥적으로' 뭔가를 하는 버거 일당은 히피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클라우드가 쉴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지 파티의 격식이 아니다. 초대받지도 않은 파티에 와서 난데없이 사랑을 고백한다고 하더니 온 테이블 위를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임에 틀림없지만, 어떠한 것보다 개인의 자유와 사랑, 행복을 우선시하는 히피들에게 있어서는 이는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들의 '탈사회성'은 복장에도 잘 나타난다. 장발의 남성, 여남을 가리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머리, 민속풍의 옷들, 너덜너덜한 차림새 등 이른바 '히피 패션'은 그 당시에는 물론 현대에도 '튀는' 것일 만큼 파격적임에 틀림없다. 이런 모양새로 마약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다니니 그들이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다고 - ridiculous -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사상은 아름다웠지만 너무나도 급진적이어서 '미친 것'으로 보이기 쉽다. 지니가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두 남성 중 누구의 아이인지 개의치 않는다고 하는 것은 별 생각 없이 접하면 참으로 놀랍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버거 일당 안에서 그것이 누구의 아이이든 그들은 같은 사랑을 줄 것이기에, 그들은 가정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고 있기에 그런 식의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외부에서 보기엔 충분히 '미친' 것이겠지만.



자유와 사랑


영화의 전체 흐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클라우드와 쉴라의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비중이 큰 부분은 그들의 스토리 보다는 히피들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두 가지가 확연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히피들은 개인의 자유와 사랑, 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그들은 개인을 구속하는 사회 제도도, 인종주의 같은 차별적인 이념도,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에 반대한다. 흥미로운 점은 클라우드가 히피들의 삶을 경험하고 나서 향하는 공간이 군대라는 점이다. 어쩌면 히피 문화와 가장 대비되는 문화를 가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군대에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군인 개개인의 행복과 자유는 국가 유지를 위해 희생되는 공간이 바로 군대인 것이다. 바로 이 군대라는 공간과 버거 일당으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는 버거가 클라우드를 바꿔치기 함으로써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이 가져온 결과는 웅장한 노랫소리와 함께 사라져간 버거의 죽음이었다(히피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무튼 마지막 장면에서 남은 이들이 묘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슬프다기 보단 아름답다. 아마 버거는 끝까지 다른 이에게 총을 겨누진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히피였기 때문이다. 끝까지 히피의 삶을 살다가 결국 자신이 희생된 버거에 대한 추모의 노래는,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이렇듯 히피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사랑은 '개인의 자유와 사랑'이지만 '나만의 자유와 사랑'은 아니다. 이러한 사상은 '나 잘 살면 되지'라는 천박한 개인주의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 커다란 의미를 준다. 너무나도 즉흥적이고, 쾌락을 추구하고, 자유를 원하는 히피들의 사상은 정말 산만해 보이고 생각 없이 욕구만을 따르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적어도 그들은 다른 이들의 삶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 자신의 삶이 자유로워야 하는 만큼 다른 이들의 삶 역시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억압함으로써만 자신이 억압받지 않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히피들의 자유에 대한, 사랑에 대한 노래는 그렇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가진다.

 

히피들의 사상이 실패했던 이유는 너무나도 급진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2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그들의 사상이 급진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사회가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들의 사상은 미친 자들의 것도 아니며, 우스꽝스러운 것도 아니다. 너무나도 개인의 자유와 사랑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억압받지 않으려고 하고, 따라서 다른 이들도 억압하지 않으려 하는 것. 이렇게 아름다운 사상이 또 어디에 있을까. 물론 그들의 삶의 양태 중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꽤나 있다. 하지만 무언가에 - 사회제도에도, 지배적인 이념에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에도 - 얽매여 있지 않은 히피들의 자유로움은 나로 하여금 한없이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 자유로움. 내용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아름다웠던 버거 일당의 노래는 끊임없이 오늘도 내 귓전에서 맴돌고 있다. '자유로워지길-' 그들의 노래는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이다. 이제 히피라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평화/반전 시위와 자유에 대한 외침은 사라지지 않았듯이, 버거 일당은 사라졌지만 그 자유와 사랑과 행복의 멜로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