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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도서] 뇌, 생각의 한계 : 평생학습 관점에서 두뇌 연구의 가능성













2010년 가을학기 성인학습자연구 리뷰페이퍼



평생학습 관점에서 두뇌 연구의 가능성
- Robert Berton, 생각의 한계』 -
  


평생학습과 두뇌 연구

평생학습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심에 놓일 수 있는 개념은 다름 아닌 학습일 것이다(한숭희, 2009: 82). 하지만 여러 분과학문들 중에서 학습이라는 개념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학문은 교육학이 아니라 심리학인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심리학이 취하고 있는 실증적인 접근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증적인, 혹은 물리적인 증거들을 통해서만 학습에 대한 설명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철학의 관점에서 교육과 학습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고(Hamlyn, 이홍우 역, 2010), 그 중에는 심리학의 관점을 일부러 버리고 독창적인 교육적 인식론을 발전시킨 학자도 있다(장상호, 2000). 또한 여러 성인학습이론들이 제시하는 학습의 개념들은 상당부분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이 학습을 다루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설명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심리학과 의학에 의해 점유된 것으로 보이는 두뇌라는 영역은 많은 학자들이 학습이라는 개념을 연구할 때 암암리에 가정하고 있는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학습연구의 새로운 관심, 새로운 연구방법을 요구한다(강대중, 2008: 59). 물론 지금도 두뇌라는 주제를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다루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한숭희, 2009: 91)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바로 많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독자적인 방법론을 고안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두뇌를 연구하는 작업은 일단 지금까지 심리학이 이룩해놓은 뇌 과학의 성과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Robert Berton, 생각의 한계역시 그러한 작업의 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생각의 한계
 

, 생각의 한계(Robert Berton, 김미선 역, 2010)의 부제는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이다. 책의 주요한 흐름은 이 부제의 물음을 그대로 따라간다. 서문에서 저자는 확신은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고 사고과정조차도 아니다 이성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무의식적인 뇌의 기제들로부터 일어난다”(12p)는 것이 이 책의 전제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책의 목표는 확신의 힘을 벗겨내는 것”(14p)임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두뇌 연구의 여러 성과들을 데이터로 삼아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믿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라는 것은 어째서 객관적, 보편적 확실성을 획득할 수 없는지를 밝히는 하나의 증명이라고 볼 수 있다.

물 좀 맞아봐야 아는가?

여기서 저자가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는 개념은 안다는 느낌’(17p)이다. 그에게 안다는 느낌은 확신, 옳음, 신념, 맞음의 느낌들을 한 덩어리로 모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은 많은 부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앎에 의존하고 있고(25p), 그렇게 의식되지 않는 기초생리적인 작용이 사실은 우리가 안다고 느끼는 것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이미 결정하고 있다(38p)는 점에서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또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과 판단들은 우리 뇌 속의 신경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에 의존하는데, 그 연결은 새로운 경험이 발생함에 따라 다르게 배치된다(65p). 그런데 그 배치는,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패턴화에 따라 예측 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기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는다(148p)[각주:1]그렇기에 우리가 무언가를 분명히 안다는 것의 확실성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전자와 같이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진 요소를 변인으로 고려한다고 해도 곧 우리는 당장 문제가 더 복잡하다는 것을 감지한(156p).

결국 우리는 질병이나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처럼,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 사실견디는 법을 배워야하며(283p),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한다(284p). 다시 말해 확실성은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284p)

이렇게 저자는 서문에서 확신이라는 하나의 정신현상이 무의식적인 뇌의 작용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맨 마지막 장에서 그래서 확실한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지각, 감각, 쾌감, 유전자 등을 둘러싼 많은 기존의 실험연구들이 이 논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책은 일단 신선하다
. 근거로 들고 있는 많은 사례들은 주장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결론부에서는 확실성이라는 환상을 버리되, 뇌의 변화, 우리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어떻게 잘 고려할 것인가, 라는 고민도 던져주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든 느낌은 모종의 답답함이었다. 어떤 행동의 변화를 서술함에 있어서 환경이라는 요소가 고려되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뇌를 연구하게 된다면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뇌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생각하면 기본적으로는 딱 그 개인이다. 그러다 보니 뇌의 통제범위인 개인을 넘어선 다른 사람과의 교류’, 혹은 사회적 행위는 뇌가 받아들이는 경험 정도에 머물러, 보다 확장된 학습, 혹은 변화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인용된 연구들도 이렇게 하면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다른 부분이 반응하더라, 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며 예상이 불가능하다’‘확실한 것은 없다와 같은 결론만을 제시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모종의 물리적인 변화가 존재한다
,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멈추지 않고 학습과 인간에 대한 발전된 이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뇌 과학의 성과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다.



, 생각의 한계와 평생학습연구

Berton이 제시한 여러 뇌 과학의 연구들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많이 보여준다. 먼저 신경망에 관한 연구는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이 어떤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 신경망이라는 네트워크 속에 존재함을 드러냈다. 이 네트워크는 매우 민감해서 한 연결이 바뀌면 다른 연결이 모두 같이 바뀐다”(64p)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 네트워크의 연결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물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하고 있더라도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개별성을 획득하게 된다(65p).

<공각기동대> TV판에 수시로 등장하는 '네트워크'의 이미지


이러한 아이디어는
Mezirow가 말했던 관점의 전환이나 Piaget가 제시한 도식의 동화/조절과는 다른 관점에서 개인의 학습경험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주인공인 쿠사나기가 육체를 버리고 네트워크 시스템 그 자체로 들어가서 하나의 의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신경망 속에 각각이 고유의 방식과 의지를 가진 채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로 존재한다면 새로운 방식의 통찰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설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경험연구들이 덧붙여진다면, 지금까지 평생학습담론에서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사회적인 학습의 관계망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던 것을 넘어 개인적인 차원의 학습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벨상 수상자인 내쉬가 합리적인 학문활동과
남극의 왕이 될 예정이 있다라는, 남들이 보기엔 정말 비합리적인 망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것, Piaget식으로 표현하자면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에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의 사고가 잘 조직되고 안정된 하나의 관념체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네트워크 속에서 각 인자들이 치열하게 내부에서 부딪히며 어떤 연결이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생산되는 것이라면, 모순된 의미들이 동시에 한 사람의 사고 속에 존재할 수 있다. 교육적 인식론을 제시한 장상호는 이러한 상태(동차이품)에서 결국 그 모순이 해소되는 과정(회득)을 교육이라고 보았는데(장상호, 2000: 480), 이젠 과연 그러한 해소라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물음까지 따라 나오게 된다. 네트워크로 존재하는 학습경험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많은 새로운 질문들을 불러올 것이다


Berton에 따르면, 유전자가 우리의 사고나 판단, 성격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생활 자체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유전자가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가 없다(148p).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한 이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학습이론의 연구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보편적으로 타당할 수 있는 거대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버리고 마치 지도를 그리듯이 학습의 여러 측면들을 묘사하듯 드러내는 연구들이 제안될 수도 있고, 정말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공통점을 뽑아 학습이라고 명명한 뒤 학습의 과정이나 구조를 해부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학습으로 여기는 현상을 둘러싼 권력과 정치의 문제를 탐구하는 문화연구가 수행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이러한 움직임들은 존재한다(Kang, 2007). 

이 외에도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뇌에 끼치는 영향을 통해 학습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분석해본다든가(90p), 흔히 직관적으로 구분하는 감각지각이 사실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 작동하는 방식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것과 이성을 통해 성찰하는 것의 이분법을 해체해본다거나 하는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 생각의 한계를 통해 평생학습연구와 두뇌 연구가 맞닿을 수 있는 지점들을 탐색해보았다. 사실 책이 워낙 뇌와 관련해서 다룰만한 것들은 전부 다루고 있다 보니 책 본문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뻗어나가게 되는 개념, 질문,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먼저, 감정이나 쾌감을 다루다 보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욕망이라는 문제가 평생학습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뢰즈와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논의를 참고하면 동기 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욕망과 학습을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창의성과 관련된 궁금함이다. 연구에 따르면, 뇌는 반복되는 행동이 있는 경우에 무의식의 수준에서 몇 가지 작업들을 알아서 처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처리 과정은 갈수록 견고해져 점점 더 효율이 높아지게 된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비슷한 과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정민승, 2010: 158). 그런데 그렇게 사고의 회로가 견고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경직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창의성이라는 것은 전문성과는 다른 방향의 훈련이 필요한 것일까? 같은 경로의 네트워크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다양한 네트워크의 활용을 가로막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전문성과 창의력을 그렇게 충돌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금 의문이 든다

 
이렇게 두뇌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평생학습과 관련된 여러 고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솔직히 상상해보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평생학습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뇌 과학의 성과를 맹신하거나, 무분별하게 학습이론으로 치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강대중, 2008: 65). 하지만 뇌 과학이 우리에게 새로운 안목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많은 연구들을 통해 뇌 과학을 어떻게 잘 활용할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두뇌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인가, 와 같은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강대중(2008). 평생학습이론의 확장 -두뇌과학의 시사점-. 평생교육연구 14(1). 한국평생교육학회. 57-82.
장상호(2000). 학문과 교육() : 교육적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서울대학교 출판부
정민승(2010). 성인학습의 이해. 에피스테메
한숭희(2009). 학습사회를 위한 평생교육론(3). 학지사
D.W.Hamlyn. 이홍우 역(2010). 교육인식론. 교육과학사
Kang, D. J. (2007). Rhizoactivity: Toward a postmodern theory of lifelong learning. Adult Education Quarterly, 57(3), 205-220.
Robert Berton. 김미선 역(2010). , 생각의 한계. 북스토리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http://tln.kr/4obq0 
- 비 오는 날의 사케 : http://blog.naver.com/0lioil0?Redirect=Log&logNo=40017528237 
- 1000명 목표 [대환영] : http://blog.naver.com/ssh9694/60019488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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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가 든 예 : 불안공포를 심하게 느끼는 유전자가 있는 남편과, 그렇지 않은 부인이 여행을 떠나는데 비행기 출발시각 몇 시간 전에 집에서 나갈 것인가를 논의한다고 가정해보자. 남편이 시간을 확실히 맞추고픈 마음에 일찍 집을 나가자고 했는데 부인은 전혀 그럴 필요 없다며 천천히 가자고 한다. 이 상황에서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저자가 제시한 상황에서는, 남편이 바로 수긍한다. 왜냐하면 그가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은 부인과의 말다툼으로 인해 이혼을 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그는 이미 두 번이나 이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패턴을 고려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해도 다른 고려할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