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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논문] 형식교육, 비형식교육, 무형식학습













2010년 가을학기 성인학습자연구 리뷰페이퍼


Straka, G. A. (2004). Informal learning: Genealogy, concepts, antagonisms and questions.


Colley, H., Hodkinson, P., & Malcolm, J. (2003) Informality and formality in learning: a report for the Learning and Skills Research Centre.

 

La Belle, T. J. (1982). Formal, nonformal and informal education: A holistic perspective on lifelong learning. International Review of Education, 28(2), 159-175. 



형식교육, 비형식교육, 무형식학습



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형식무형식비형식학습을 비교/대조하는 글을 읽어본 것 같다우리가 성인학습 이론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에는 애초에 직장이나가정과 같은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학습까지도 가정하기 때문인지.. 문득 이 내용을 정말 오랜만에 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공인화된 교육기관에서나공인되지는 않았지만 교육을 목표로 하는 기관에서나, ‘교육’ 혹은 학습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일상생활에서나 항상 학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구체적으로 논증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전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그렇다면 이제 이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학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장상호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고유의 내재율을 밝히는 것이고실천적으로는 그렇게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학습을 어떻게 인증할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형식학습에 대한 논의에서 Straka가 언급했듯이 개인이 무엇인가를 학습했다는 사실그리고 그 무엇’ 자체의 내용이나 가치에 대해서는 쉽사리 다른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다그래서 나오는 것이 결과적으로 얻은 역량을 통한 판단인 것 같은데 어떤 결과 기준’(?)이 다양한 개인들의 학습경험을 타당하게 인정해줄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 같다그래서 학습의 경험을 인정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도 앞서 언급한 학습이란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문제와 더불어 이론적으로 좀 더 엄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이런 생각과는 별개로 Straka의 논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결론부에 나오는 ‘giving more to those who already have’라는 문구였다요새 한국 사회에도 워낙 교육양극화가 이슈여서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학교에서 어떤 교과를혹은 교과로 조직화되지 않은 다른 어떤 것들 학습하는가는 조금 더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일지라도 학습을 하는 역량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키워주는 건 분명히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교육사회학을 공부할 때 오성철 선생님이 쓰신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글을 읽고 당시 <교육저널>에서 다른 기자 한 명과 학교가 필요한지학교에서 가르쳐야만 하는 지식이 있는지를 두 가지 관점(필요없다-다양성존중필요하다-저소득층 생존의 문제)으로 풀어본 적이 있다오성철 선생님의 논리는 국영수와 같은 지식이 사회적 생존에 필요하다면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도 그런 지식을 갖출 수 있는 통로로써 공교육이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것도 국영수와 같은 교과들과 마찬가지로어쩌면 훨씬 더 중요하게 학교에서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학습을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지 주로 생각해보고 있다다른 수업 시간에 장상호 선생님의 저서들을 읽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계에 선진과 후진의 개념특히나 후진의 자발적인 승복이라는 교육의 과정을 적용하는 게 잘 와 닿지가 않아서 질문을 자꾸 던지고 그 수업의 기말보고서도 그쪽으로 준비하고 있다어쩌면 우리가 연구를 할 때학습의 내용과 형식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학습이론을 세우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학문의 학습예술의 학습그리고 종교의 학습이라는 게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러면 그걸 학습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