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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고서

'훌륭한' 교사를 연구한다는 것













2011년 봄학기에 들었던 <교육과 생애사> 수업의 주제는 '훌륭한 교사의 생애사'였다. 당시 썼던 보고서에서 선생님의 신원과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삭제하고 올림. 글도 다듬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2011년 봄학기 교육과 생애사 기말보고서



'훌륭한' 교사를 연구한다는 것

정수연 교사의 생애사 연구



들어가며


사범대학의 교생실습은 고생실습이라 불릴 만큼 힘든 경험이다. 고등교육 수준에서 정규교육과정에 강도 높은 실습이 포함되는 것은 의대를 제외하면 교대와 사범대(및 교직과정)밖에 없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 힘든 실습을 필수로 지정하고, 타 단과대 학생들의 사범대학 복수전공, 전과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이유는 아마도 국가 차원에서 예비교사의 역량을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날이 갈수록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국가제도의 틀 밖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서덕희, 2008),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이 담당하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교육이 가지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의 실천가인 교사의 자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김회용, 2007). 문제는 대체 누가 좋은 교사, 나아가 훌륭한 교사인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운동선수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좋은 교사의 자질을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누가 훌륭한 교사인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몇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어째서 좋았고, 언제 영어 선생님 실력이 어땠고 등등을 얘기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모두가 인정할만한 훌륭한 교사의 전형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함이란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여기서는 교사의 훌륭함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의 주된 목적은 훌륭한 교사의 정수essence에 대해 이론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훌륭한 교사와의 만남에서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고백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다만 그 고백을 통해 훌륭한 교사를 둘러싼 질문과 대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한 편의 연구보고서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연구보고서는 문제제기이론적 배경연구 방법’-‘연구결과논의 및 요약의 순서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처음 주제가 정해졌을 때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의 고민과 나름의 깨달음을 최대한 시간 순서에 맞춰 키워드와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훌륭한 교사에 대한 나의 고민이 충분히 숙성된 문제의식과 그로부터 도출된 연구 질문을 중심에 두고 안정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면서 그 모습을 달리해왔기 때문이다



질문 - 훌륭한 교사가 누구야?


훌륭한 교사를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누가 훌륭한 교사인가?” 혹은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같은 질문이라도 누가 던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대답을 듣더라도 그 해석이라거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누가라는 변수 외에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도 그 질문의 잠재적인 대답, 그리고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질문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같이 볼 필요가 있다(Merill & West, 2009).


내가 처음 주제를 접하고, 떠올린 질문은 이것이다. “훌륭한 교사가 누구야?” 여기서 누구야?’는 실제 교사 중에 누구를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사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가? 교사의 훌륭함이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물음을 담은 표현이다. ‘좋은’, ‘멋진’, ‘바람직한같은 표현과 다르게 훌륭한이라 하면 왠지 그 무게감 때문에 더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부담이 가시기 전에 강의 진행 일정에 맞춰 훌륭한 교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뭔가 찜찜했다. 당시로서는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아 교사의 훌륭함은 계량화된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둥, 태도가 중요하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썼지만, 결국 뒤에서는 훌륭한 교사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내가 쓰면서도 과연 이걸 다 충족시키는 교사가 세상에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수업을 잘하고, 좋은 담임이 되는 교사 어떻게 그런 전문성을 습득하게 되는가,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끊임없이 공부해야 학생들과 신뢰관계를 충분히 구축해야 성찰해야


정말로 모든 교사가 이렇게 해야만 한다면,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하지 않는 교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규정한다면 어떤 예비교사들은 부담감에 교사 못하겠다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굳이 누가 그랬다고 추측할 것도 없이 나 스스로가 그랬다. 고등학교 내내 영어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했고 결국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지만,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교사의 모습에 한참 모자라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모둠 내에서 활발히 하는 학생에 대한 편애(대놓고 편애했단 말은 물론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저 아이들은 씨니컬하다'라는 식의 매우 위험한 '규정' 등등 내가 교사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짓들은 거의 다 했다. 여름 열린교실의 경험은 나에게 '교사가 되는데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내가 교사의 훌륭함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다룰 때는 교사를 하고 싶다는 희망, 혹은 교사를 못하겠다는 좌절의 경험이 없는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나는 A도 잘해야 하고 B도 잘해야 하고 C도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줄줄이 훌륭함의 기준을 내세우는 것이 못마땅했다. 교사가 중요한 직업이고, 굉장히 복합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건 사실이지만(안길훈, 2007), 불필요하게 높은 진입장벽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교사는 A, B, C도 잘하는데 거기에 D까지 잘해야 한다더라는 식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훌륭함을 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은 많았지만 결국 훌륭한 교사를 직접 섭외해서 면담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올 때까지도 뚜렷한 핵심 질문을 만들 수 없었다. ‘교사의 훌륭함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왠지 불만족스러웠고, 조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만남 - ‘훌륭한 교사를 찾다


일단 강의에서 주어진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상을 받은 교사들 중에 연구 참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주변 인맥을 활용하고 싶어서 현직 교사 친구들에게 상을 받은 교사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애들 막 때리고 이런 선생님들도 받아”, “그냥 돌아가면서 받는 거야등등 상은 신뢰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교직경력이 짧아서 이런 사례들만 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경로로 상 받은 교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교생실습 때 교과지도를 받았던 정수연 교사(가명, 교직경력 21)가 수업 연구로 상을 받았다는 기억에 의존해 이메일을 보냈다.


'훌륭한'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크네요. 제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을 테니 연락주세요. 시간을 조정 해봐요.


이 답장을 받고 참 호의적인 연구 참여자를 구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한 시름 놓았다. 그런데 정작 면담을 가서 확인해보니 정 교사는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수업을 워낙 잘한다는 나의 판단이 작용해서였는지 기억이 장난을 친 것이다. 하지만 그 첫 번째 면담에서 나는 이 사람은 훌륭한 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학부 시절 사회학 수업을 들었던 강사님(현직 교사)의 홈페이지를 소셜 네트워크 덕분에 우연히 발견했다. 그런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그러니까 난 다만 나잇살 먹어서 밀어내기 한 상을 받았단 말인가? 어쩐지 공적조서를 내가 직접 쓰게 되는 상황이 이상하다 했더니만, 상 받을 사람을 주는게 아니라 밀어내기로 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관행이 생겼던 것이다. (from 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


이 글을 접했을 당시에는 이미 상을 가지고 훌륭한 교사를 가를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서 있었지만, 모종의 사회적 권위를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연구상을 받은 적이 있는 예비 참여자와도 아직 연락이 닿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미련을 털 수 있었다. 모든 상이 그렇진 않겠지만, 어떤 사회적 권위를 빌리기에도 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보잘 것 없었다.



대화 - 교사의 훌륭함은 어떻게정의되는가?


첫 면담에서는 정 교사에게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에 앞서 꽤 긴 시간동안 수다를 떨었다.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만난 교생과 지도교사는 서로 쌓아놓은 말들이 참 많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교직에 관한 얘기도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나는 얼른 준비된 질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연구참여 동의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정 교사는 아참, 나도 선생님(연구자)한테 서명 받을 게 있는데라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용지를 내놓았다. 많은 선행연구들은 학생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의 모습 중 하나로 꼽는다(서동미 외, 2008; 안길훈, 2007; 김병찬, 2005). 나에게 내민 것 외에 이미 두툼하게 모아놓은 서명용지는 학생의 인권을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내심 본격적인 면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 교사의 훌륭한 모습을 발견했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학생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기준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 현장의 모습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존 연구들을 보면 학생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의 모습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지도력 있는 교사 역시 훌륭한 교사의 모습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서동미 외, 2008; 안길훈, 2007; 김병찬, 2005).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지향은 (나에게는 전혀 충돌하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 충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실제로 서울시에서 체벌금지(학생인권신장)가 시행된 이후 많은 교사들이 지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교총 "체벌금지 원년에 교권침해 사례 최다", <연합뉴스>, 2011317)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교사의 지도력 하락). 그렇다면 나에게 훌륭한 교사인 정 교사는,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훌륭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교육현장에 해가 되는 교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무리 정 교사가 훌륭하다고 생각해봤자 그 생각에 다른 사람이 공감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학교는 수많은 이해관계, 권력관계가 얽혀있는 현장이다(김신일, 2009). 사람마다 그 이해관계, 권력관계에 따라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한 차례 면담을 마치고 전사본을 훑어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모습에 밑줄은 쳐놨지만, 그걸 어떻게 글로 풀어내야 교사의 역할이나 전문성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내가 굳이 글로 풀어내지 않고 이 선생님이 수업하는 걸 직접 본다면’, ‘이 선생님이 학급 학생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본다면’, ‘이 선생님과 직접 얘기를 나눠본다면다른 사람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속으로 아쉬운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안고 진행된 두 번째 면담에서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었다.


한 가지 모습의 교사가 학교를 다 채우면, 절대로 훌륭하지가 않아요. 애들에게는 주위에 있는 교사가 다양한 모습을 가진 롤모델이어야 좋아요. 그거를 한 명이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봐요.


이 얘기를 들은 순간, 말 그대로 모든 게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나 훌륭한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같은 교사라고 해도 어떤 학생과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훌륭할 수도,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재미를 주면 좋고, 한편으로는 꼼꼼해서 잘 챙겨주시는 선생님이 있으면 좋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 이런 걸 얘기해주실 수 있는 선생님이 있으면 좋고


누군가는 재밌는 교사를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꼼꼼한 교사를, 누군가는 사고력을 자극하는 교사를 원할 것이다. 10명의 학생이 있다면, 10명의 서로 다른 의미에서 훌륭한 교사가 있을 수 있다.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는 수업뿐만 아니라 정치가 있고, 사회가 있고, 문화가 있다(장상호, 2000b). 학교는 말 그대로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종합적인 삶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그 모든 삶의 측면에서 훌륭한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없다는 게 정 교사의 답이다.


그렇다면 대체 훌륭한 교사는 누구인가? 다시 말해 교사의 훌륭함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재현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주는 함의는 왜곡 없이 현상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의미파악’, ‘의미생성’, 혹은 의미부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조용환, 2011; 곽영순, 2009; Richardson, 2000). 즉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정 교사로부터 추출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 교사의 삶과 정 교사를 둘러싼 세계, 연구자인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연구 질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의미를 포착해 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훌륭함의 의미 역시 정 교사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것 관계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끌고 온 질문 교사의 훌륭함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원인은 바로 무엇으로에 있었다. 물어볼 때 무엇이냐라고 하면 무엇이다라고 대답해야 하고, 자연스레 그 무엇의 자리에 전문성이나 지도력, 혹은 태도같은 것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의 훌륭함은 특정한 무언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교사와 만나는 학생, 연구자,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맺음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교사의 훌륭함은 무엇으로보다는 어떻게’, ‘어떤 상황맥락에서정의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연구 - ‘훌륭한 교사를 연구한다는 것


하지만 훌륭한 교사, 혹은 바람직한 교사를 다루고 있는 연구물들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훌륭한 교사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거칠게 정리하면 이런 식이다. 한 연구에서 훌륭한 교사는 이렇다(김진한, 1998)라고 정리하면, 다른 연구에서 이런 걸 추가할 수 있다(김병찬, 2005)고 하고, 뒤이어 학생들이 보는 건 다르다(안길훈, 2007)가 논의되고, 인류의 스승들은 이랬다(장상호, 2000; 심승환, 2007)는 얘기가 나오고, 생애사로 하면 이런 게 확인된다(서동미 외, 2008)거나 어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렇다(양은주, 2007) 등등이 더해지면서 거의 종합선물세트를 방불케 하는 훌륭한 교사의 자질들(교과내용 및 교수법에 대한 전문성, 학자/연구자로서의 능력, 인성, 지도력, 직무능력, 돌봄 능력, 통찰 등등)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논의지형을 보고 있노라면 연구자들이 교사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김회용, 2007) 학교교육에 대한 특정한 지향이나 철학에 교사라는 직업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속성들을 거론하다 보면, 앞서 학생인권과 교사의 지도력에 관한 예를 들었듯, 같은 연구에서 제시하는 좋은 교사의 자질들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 결과들이 설득력 없다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교사에 관한 글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근거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나의 옛 선생님들, 그리고 교생실습이나 대안학교 교사를 할 때의 경험까지 합쳐진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나는 , 이 사람은 이런 건 정말 훌륭한 것 같다혹은 학생들은 훌륭한 교사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같은 글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른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 지식은 관계적으로 형성된다(곽영순, 2009).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이나 의미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교사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교사를 다루는 글을 읽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이 할 일은 훌륭한 교사에 대한 보다 다양한, 그리고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 아닐까?


훌륭한 교사의 학습생애사는 그런 심층적인 연구에 걸맞은 시도라 할 수 있다. 생애사는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질적 연구는 반복가능성이나 일반화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좁은 사례를 심층적으로 다룸으로써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한다(조용환, 1999). 특히나 훌륭한 교사에 관한 글을 읽을 만한 잠재적인 독자들 중에 다수가 현직/예비교사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애사 연구방법은 더욱 의미가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지금까지 훌륭한 교사에 관해 이뤄진 연구들은 훌륭한 교사의 자질이 무엇인지를 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런 내용을 접하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처럼 훌륭한 교사에 대한 거리감만 키울 우려도 있다. 생애사 연구는 연구 참여자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참여자의 삶에서 어떤 경험들이 현재 참여자의 모습을 구성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강대중, 2009). 그렇기에 생애사 연구를 통해서는 훌륭한 교사는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훌륭한 교사는 그러한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러한 경험들은 어떻게 훌륭한 교사의 지금 모습에 영향을 끼쳤는지와 같이 훌륭함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이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면 역할모델로서 훌륭한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연구방법은 아마도 생애사일 것이다.



이야기 내가 만난 훌륭한 교사


이제 훌륭한 교사의 생애사를 이야기할 차례이다. 정수연 교사는 내가 만난 훌륭한 교사이다. 다만 여기서 훌륭함의 의미는 앞서 언급했듯이 고정된,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봐야한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나와 정 교사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훌륭함의 의미가 형성되었는지 풀어낸 것이다. 여기에는 나와 정 교사가 만나 맺었던 관계, 정 교사가 해석한 스스로의 생애와 그와 관련된 사회적/역사적/문화적 맥락 등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등장한다. 그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내가 서술하는 정 교사의 훌륭함을 다시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2011: 좋은 수업을 위한 노력


교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활동은 수업이다. 아마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잘 하는 수업,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수연 교사는 좋은 수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하는 수업이 아니고 내가 3~4를 하면 아이들이 나머지를 하는.. 같이 만들어가는 수업이 정말 수업인 것 같아요. 함께 참여해서 같이 만들어가고, 완성해나가야 하는 거고. 그게 애들에게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는 수업의 내용보다는, 방법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공립학교의 교사로서 수업 내용에 대한 자율성이 크지 않고, 또 수업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내용보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교생의 입장에서 정 교사의 수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협동학습이라는 수업방식이었다. 협동학습은 강의식 수업보다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지만, 교사가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은 훨씬 많다(Gary, 2006). 또한 학생들의 관계나 학급 특유의 문화가 수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한 마디로 협동학습은 어려운 수업방식이다. 하지만 애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수업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정 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어렵더라도 조금 더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정 교사의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도는 물론 내용전달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좋은 수업이라 할만 했다.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게 뭔지 쩔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능숙하게 수업을 조직하고 진행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친 듯이 작아지고 말았다. (교생일지, 2009.05.07)


남들이 보기에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 교사는 20여년 교직생활을 한 베테랑이지만 지금도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연수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연수를 들었는데, 제가 하도 여기저기 보이는 데마다 가입을 해가지고 방학이나 학기 중에 연수가 여러 가지 있어요. 그런 연수 듣고, 많이 배우고 (이메일 주소) 막 뿌려놓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막 날아와 있어요. 또 하나는 지난겨울에 교육공동체 벗, 거기에 가입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교육사랑방이라고 해가지고 테마를 정해서 선생님들을 초빙해서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그런 만남 올해부터는 교사모임에 나가게 되는데, 혼자서 변화나 혁신 이런 걸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게 느껴지는 거에요.


이런 노력들로 인해 정 교사의 수업은 관성으로 이어진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가 교생으로 정 교사를 만난 2009년은 물론, 2010년까지만 해도 협동학습을 활용했지만 지금은 또 다른 고민이 있다고 한다.


요즘은 사실 협동학습에 대해서도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이런 방식으로만 아이들의 참여도를 끌어낼 수가 없나 고민이 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결정타를 날린 게 배움의 공동체에요. 이게 뭔가 조금 더 연구해볼만한, 알아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동학습부터 배움의 공동체, 그리고 이런저런 연수와 교사모임에 이르기까지 정 교사의 좋은 수업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사 친구의 말을 빌리면 그 경력에 그러기 쉽지 않은열정이다. 당연히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91, 그리고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 교직생활 첫 해의 사건들


1990년에는 한국 교원양성체제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최초로 국립대학 사범대 졸업생들도 임용고사를 본 것이다. 정수연 교사는 그렇게 임용고사 1세대로 1991년에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수업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목이 쉬었. 단순히 학생들이 지금보다 많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때는 교단일기 같이 일기를 썼어요. 그 때 뭐라고 썼냐면, 내가 목이 이렇게 쉬어버린 건, 왜 그랬을까를 짚어본 거에요. 그랬더니 애들이랑 소통을 하는 수업이 아니고 내가 일방적으로 뭔가 애들에게 막 넣어주려고 떠들고 있는 수업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애들이 떠들면 나는 목청을 더 키워서 애들을 제압해서 수업해야 한다는 그런


교사가 수업에서 혼자 떠드는 것은 좋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이런 경험으로부터 싹텄다고 추측할 수 있다. 정 교사의 좋은 수업을 위한 열정적인 노력역시 이 때부터 시작된다.


애들을 좀 더 재밌게 가르쳐야 하나, 쉽게 가르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완전 무모하게 학교에다가 저 자료 좀 구하러 교육개발원 좀 갔다오겠습니다’, 이러면서 조퇴를 했어요. (웃음) 교육개발원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당시에는 아직 국내에 강의식이 아닌 수업방식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 교사로서는 교육개발원에 가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무모한 시도들이 있었음에도 정 교사의 교직 생활 첫 해는 힘은 힘대로 들면서 별로 효과는 나지 않는 시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수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틀 때이기도 했다. 1991년의 문제의식은 2011년까지도 이어져 지금도 정 교사는 “10이라면 교사가 3~4를 하고 학생들이 나머지를 채우는수업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정 교사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교생실습 하면서 빼먹지 않고 항상 얘기하는 뒤통수 맞는 질문을 던졌던 그 학생 만났던 시기. 수업 끝무렵에 언제나처럼 질문 있느냐고 했는데 그 친구가 질문을 했죠. ‘선생님, 생산에 기여한 대가만큼 누구나 돌려받아야 되는 게 맞다면, 생산에 기여하지 못한 장애인은 적게 받아도 될까요? 혹은 받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그 질문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까지를 지적한 것이어서 굉장히 많이 당황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내가 수업을 준비할 때 교과서 안에 있는 이야기와 그 밖에 다른 이야기 그리고 어디까지를 더 고려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었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정 교사는 수업을 준비함에 있어 훨씬 더 꼼꼼해질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교생과 지도교사의 관계로 만나 처음으로 수업준비에 관한 얘기를 나눈 날, 정 교사는 나의 실습록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고려해야 할 내용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모두 필요하지요.



처음에는 그냥 의례 하는 얘기이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일 이뤄지는 교과 평가회를 통해 수업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누는 과정을 거치고, 무엇보다 교생실습 중반에 정 교사의 뒤통수 맞는 질문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는 저 말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다. 당시에 나도 협동학습을 해보겠다고 교안을 짜고 시연해보면서 정 교사가 수업 하나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2006~ 2010: XX중학교 근무가 주는 자극


사실 1991년의 사건들과 정 교사의 좋은 수업을 위한 노력을 연결시킨 건 정 교사 자신이 언급한 내용이 아니라 내가 자료를 가지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정 교사가 스스로의 노력에 관해 직접 대답한 내용은 XX중학교 근무 경험이다. 정 교사가 근무했던 XX중학교는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러 교과의 실력 있는 교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수업 연구로 상을 받는 교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주변 환경이 그러하니 자연스레 정 교사도 더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XX중학교 근무가 저를 분발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한데요. 그 전에는 별다른 수업하는 것에 대해서 도전이나 많은 고민 같은 게 없었어요. 그냥 하던 대로 수업해도 별 탈 없이 지내왔는데 XX중학교 가서 다른 선생님들 하시는 내용이나 노력을 보면서 내가 하던 것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정 교사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매해 5월마다 대규모의 교생실습이 이뤄진다. 교생 지도교사로서 정 교사는 멘토 역할을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었다. 교생실습이 동시에 진행되는 관련 학교들을 통틀어 가장 늦게 끝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매일 늦게까지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교직 생활에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지도교생들과 최대한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은 정 교사에게도 좋은 계기였다.


교생 선생님들 지도하는 건, 정말로 내 수업을 또다시 돌아보는 되게 중요한 계기가 돼요. 내가 그냥 내 식대로 생각하고 실제로 수업을 짜서 해왔던 거랑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바라보는 거랑, 그걸 준비해서 애들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놓치게 되는지, 그게 또 나한테도 사실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이렇게 XX중학교 근무경험은 정 교사에게 더 좋은 수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 스스로의 수업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하지만 정 교사의 XX중학교 근무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르다.


2009~ 2011: 교사가 되고 싶게 하는 교사


나는 글의 초반부에 언급했듯이,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교사의 꿈을 접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이런저런 이유로 복수전공을 시작하고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정 교사의 말 한마디가 몇 년 묵은 나의 두려움을 깨버렸다. “잘 안됐으면 고쳐서 다시하면 돼요


교과지도 선생님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했던 얘기들. 다들 정말 심혈을 기울이고 고민을 해서 수업을 기획하지만,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잘 안 되면 그건 고쳐서 다시 하면 된다고. 고쳐서 다시 하면 된다. 완벽할 순 없으니까. (교생일지, 2009.05.13)


정 교사도 20여년 교직생활동안 수많은 실패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수업은 어떤 내용으로, 누구와,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협동학습, 배움의 공동체처럼 새로운 수업방식을 도입할 때에는 시행착오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나쁜 것,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부분, 부족한 부분을 고쳐서 다시 시도하는 의지이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점점 키워나가면 된다. 이 평범한 교훈이 정 교사의 많은 고민과 경험, 그리고 실천과 어우러져 참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교직에 대한 욕망이 두려움을 다시 앞서기 시작한 것 같다 (교육실습록, 2009.05.11)



사실 내가 정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 교사가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만은 아니다. 정 교사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굳이 수업에 관한 부분만을 뽑아낸 것은 정 교사와 내가 수업을 사이에 두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2009년에나 지금이나 정 교사가 나로 하여금 교사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나아가 나도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만큼 훌륭한 삶이 어디 있을까?(이홍우, 2004) 누군가 나에게 훌륭한 교사를 소개시켜달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 교사를 소개시켜 줄 것이고, 훌륭한 교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교사가 되고 싶게 하는 교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가며


지금까지 내가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정수연 교사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교사의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면담에서 나온 얘기들 중에 글에 포함시키지 못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정 교사는 교직생활이 힘들었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수업 외의 다른 영역에서 정 교사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리고 나는 왜 그런 것들이 훌륭한 교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지 등등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체험과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수업에 관한 내용만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사실 내 생각에 이 글의 핵심은 정수연 교사가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훌륭한 교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나름의 방향을 잡은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성과이다. 글의 후반부에서 다룬 정수연 교사의 생애사 이야기는 앞으로 나올 n개의 훌륭한 교사 연구작업 중에 하나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앞으로 더욱 더 많은 훌륭한 교사 연구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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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 교총 "체벌금지 원년에 교권침해 사례 최다", <연합뉴스>, 2011317

 

자기보고서

- 교사가 된다는 두려움(2004.12.24)

- 교생일지(2009.5.6.~5.29)

- 2009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여자중학교 교육실습록(2009.5.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