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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고서

이야기의 시작에서 만난 이야기들 (녹두호프 이모 구술사 프롤로그)













최종본 책을 내기 위한 편집 과정에서 이모의 삶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가 이
강좌를 듣고 이모를 인터뷰하는 작업을 시작하게된 맥락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건 삭제 전 버전
.



이 글은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시민인문강좌
<돌봄과 공존의 여성학>에 참여하며 기획한 작업의 1차 결과물이다. 내가 이 강좌에 참여하고, 이런 작업을 기획하게 된 것에는 뒷이야기가, 아니 뒷이야기이 있다. 하나는 이 글의 주인공인 이모와 나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여성주의의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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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모를 처음 만난 건, 대학에 갓 입학해서 선배들과 동기들과 녹두거리의 술집들을 누빌 때였다. 그 당시 어떤 느낌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녹두호프가 참 독특한 술집이()다는 것.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고, 벽면에는 낙서가 가득한. 사실 이모의 첫 인상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김춘수)이 된 건, 2006년이다. 같이 학생회를 꾸렸던 친구들과 매주 회의차 녹두호프에 모이면서 사장님이모님이 되었고, 이모가 되었다.

이모와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실 때, 사실 공통화제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자연스레 우리가 말하고 이모가 듣거나, 이모가 말하고 우리가 맞장구를 친다. 이모는 자영업자로서 겪는 일들 - 동네에 어떤 가게가 새로 생겼다, 건물 주인이 월세로 난리친 얘기, 손님들 중 누가 진상을 부린 얘기를 하거나, 가족 이야기 - 어머니의 병수발, 자식들 사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금이모의 사는 얘기는 가끔 듣고 있지만, 한 번도 이모의 예전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모의 고향이 목포라는 것도 알고, 이모가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한지 거의 20년이 되었다는 것도 알지만, 이모의 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명절 때 같이 부침개를 부치면서도, 때로는 같이 밥을 차려 먹으면서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덕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이모는 예전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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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대학에 갓 입학해서 선배들이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 당시 어떤 느낌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후로 꾸준히 책 읽기 모임에 나갔던 것으로 보아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고, 어느 정도 호기심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여성주의를 고민하게 된 것은 그 해 여름, 서울대 농활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사범대 여성주의 모임(여모)’에 합류하면서부터이다.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눈앞에 있는 문제를 통해 고민을 나누는 것은 분명 해방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억압을 동반했다.
 



이런 억압은 당시에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가지고 있던 일종의 부채감과 뒤엉켜 여모 안에서 나의 활동범위를 제한했다. 그렇게 동전의 양면과 같았던 해방과 억압의 반복에 지친 나는 다른 공간에 전념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여모 활동을 그만두었다.

남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모 활동을 할 때도 사회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여/남의 성별권력 문제보다 일상적인 문화와 권력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여모를 그만둔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권력관계의 문제와 서로 배려하는 문화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여성주의 운동과는 조금 떨어져, 나름대로의 원칙 아래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여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남성의 문제와 마주쳤다. 내 석사 학위논문을 어떻게 할지 지도교수님과 논의하던 중에 중년 여성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학문적으로 의미도 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이 가는 내용이라 한참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질적 연구의 특성상 연구 참여자와의 라포 형성이 중요한데, 과연 생물학적 남성인 내가 그 연구를 하는 것이 적합한지 의문이 들었다. 성별이분법에 갇히지 않는 것과 현실적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나의 생물학적 성별이 가지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구분해야 했다. 결국 그 주제로 논문을 쓰는 것은 포기했다. 그렇게 생물학적 남성의 문제와 다시 맞닥뜨리게 되자, 오래 전 여모를 떠나며 묻어두었던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7년 전의 고민이 학생사회에서 운동하던 사람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고민은 학문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남성연구자가 젠더 이슈를 다루는 의미와 방법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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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나는 녹두호프 이모의 삶을 듣고, 그 이야기를 나의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기획하게 됐다. 나의 경험만을 중심에 놓고 보자면, 이 작업의 목표는 남성연구자로서 젠더연구의 가능성 - 보다 근본적으로는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여성주의 실천을 어떻게 담지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은 사실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이모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이야기는 들을수록 궁금했고, 대화는 궁금할수록 재밌었다. 그리고 이야기와 대화가 쌓이는 만큼 이모와 나의 관계도 켜켜이 쌓였다. 뒤에 이어지는 것은 그 즐거웠던 대화의 흔적이다.

솔직히, 나는 이 글을 읽기보다는 직접 이모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면 이모는 니기들 정 때문에, 말동무하는 재미에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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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터뷰 내용이 담긴 글은 비공개로 게시. 링크: http://wintree.tistory.com/177 
다운을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realmbl@한멜)/트위터(@wintree77)로 연락주시면 비번 보내드리겠습니다.
(저와 친분이 없는 분들도 녹두호프 이모를 아시고,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메일이나 멘션주세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