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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리뷰

[도서] 질적 연구: 철학과 예술, 그리고 교육(곽영순)













2011년 봄학기 교육과 생애사 리뷰페이퍼

 


 



질적 연구: 철학과 예술, 그리고 교육

감상문



책의 구성에 대해


처음 이 책을 집어 들고 서문과 목차를 훑어보면서 떠오른 것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2>였다. 들뢰즈는 <천의 고원>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가 없고, 각각의 고원들을 독립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한 방식은 사실 기관 없는 신체배치와 같은 들뢰즈 철학의 기본 개념들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저자 역시 서문(4p)에서 이 책에 담긴 각각의 장들이나 소주제를 별도로 읽는 것도 좋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질적 연구 전반을 다루는 교과서를 여러 권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도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19개의 서로 다른 주제들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다뤄지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이 책 이전에 접했던 질적 연구의 입문서는 조용환의 <질적 연구 : 방법과 사례>. 그 책은 일단 양적 연구와의 차이를 통해 질적 연구의 기본원리들을 제시하고 간략하게 질적 연구의 철학적 기초와 역사를 훑어본 뒤, 실제 연구에서 사용하는 방법들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단선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1~3장과 12~13장은 그 책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내용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의 4~11장은 질적 연구의 배경을 이룬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각이 상당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철학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모든 장을 다 읽을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어차피 소속된 공동체에 따라 특정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297p) 중요한 것은 연구자가 치열하게 자신과 연구대상을 돌아보고 탐구하는 것이지, 질적 연구를 둘러싼 모든 관점을 통합해서 연구를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질적 연구에 입문하는 사람으로서, ‘질적 연구라는 이름아래 묶여있지만 서로 다른 여러 연구방법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방법적 노하우 차원에 머물기 보다는 지적 유희를 즐겨보았다”(4p)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체적인 방법론보다 질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철학을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비록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하기에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어렵고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지금도 읽었던 내용들을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이나 떠오른 질문, 생각들을 아래에서 하나씩 풀어내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을 이어가고자 한다.



연구자로서의 를 돌아보기


양적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연구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질적 연구에서는 기본적으로 연구자 역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연구자는 연구 참여자에게 말을 걸어주고 말을 터주는 촉발자 또는 자극자의 역할”(136p)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글이나 다른 수단을 통해 연구 참여자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는데, 이때 연구 참여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연구자의 입장만 들리지 않도록”(136p) 해야 한다. 결국 연구자의 존재가 연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인정하고 그 영향까지 연구에 포함시키되, 연구 참여자보다 연구자가 더 나서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의도와는 별개로 연구자의 존재가 연구 참여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질적 연구에 입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하는 숙련된 질적 연구자처럼 연구자가 참여자들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연구한다거나, 연구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거나 하면 오히려 연구에서 보려고 했던 현상이 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낯선 공간에서 연구가 진행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점점 친숙해짐으로써 보다 많은 이야기와 새로운 모습들을 연구 참여자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들었던 예시처럼 친숙한 공간, 게다가 연구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공간에서 연구를 한다면 연구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오히려 그 공간을 더 잘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연구자에게는 엄격한 자기 반성성’(224p)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반성훈련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철학중심인 이 책을 통해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런 능력은 직접 연습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으면서 길러지는 것이지, 이 책이 아니라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런 능력이 좋아지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실습을 열심히 하면서 점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술description 혹은 처방prescription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접해온 질적 연구에 관한 책, 논문, 강연자료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여러 철학적 배경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의 영향이 책 전반에 걸쳐서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연구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대해 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질적 연구에서 연구자의 참여가 연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질적 연구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다라는 설명이 아니라 ‘~해야 한다라는 당위로서 연구자의 실천’ (401p)을 다루는 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어떤 연구가 기술적이냐, 처방적이냐라는 구분은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라는 구분과 겹쳐지기보다는 연구자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왠지 학문이 하는 일은 주로 현상이 이렇더라라고 설명을 해내는 것, 즉 학문은 기술에 가까운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연구 자체가 실천이다라는 명제가 네가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너는 실천하고 있다라는 설명이 아닌 연구로 무엇을 바꿀지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라는 규범 혹은 당위로 다가오는 것이 매우 낯설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바꾸고 싶은 것이 있어도 중립적인 척혹은 못 이기는 척하던 태도를 버리고, 보다 연구자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속으로만 꽁꽁 싸매고 있기 보다는 연구 참여자들에게도 연구자의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 공동체로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실천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관건은 얼마나 자기반성이 잘 되느냐인 것 같다. 질적 연구가 양적 연구에 비해 힘든 부분은 이러한 반성의 과정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답이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 물론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나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점점 쌓아가게 되겠지만.



연구결과의 인정


질적 연구는 상황과 맥락을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현상을 두고 연구를 하더라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그 다양한 목소리들 중에 어떤 것들을 유의미한 것으로 인정할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적 연구에서의 글쓰기가 예술의 형식을 참조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연구자의 머릿속에서 허구를 창조하는 것과 질적 연구의 연구 결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질적 연구는 온전히 자신만의 관점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타인과 부대끼면서 얻은”(125p)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주관주의로 흐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질적 연구자는 타자의 삶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철저한 자기반성의 단계를 거쳐서 인간 삶의 보편성을”(385p) 드러내기에 일반화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연구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질적 연구 전반에 해당하는 원리와 별개로,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연구에서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뿐만 아니라 연구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이에 대해서 아예 한 장을 할애해(15장 질적 연구의 글쓰기)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비단 그 장에서뿐만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제기되고 있는 여러 실험적인시도들이 과연 연구 공동체 내부에서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라는 문제다. 질적 연구 강의에서 질적 연구는 연구 공동체를 항상 생각하며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양적 연구는 연구를 함에 있어 일반화를 지향해 얕고 넓게보고자 하지만, 질적 연구는 넓지는 못하더라도 개별 사례를 깊게 파고드는 것에 의미가 있으며, 비슷한 연구 사례들이 연구 공동체에 쌓이게 되면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맥락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연구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연구는 그 의미를 상실해버린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실험적인 시도들이 얼마나 다른 연구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궁금하기 보다는 상상이 안 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직접 질적 연구의 결과로 제시되는 공연을 보거나, ‘예술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만한 연구물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 포스트모더니즘과 질적 연구 엄밀함의 확보와 연구윤리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질적 연구와 예술을 연관시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3p)에서 질적 연구가 예술이구나를 느꼈음을 고백하고, 세잔(101p)이나 피카소(96p)를 통해 예술과 질적 연구가 가지는 공통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보다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은 질적 연구의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최근 예술이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의 결과물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가 아닌 을 사용한 공연을 택하는 것은 가능한 한 생생하게’(398p) 연구자, 혹은 참여자의 체험을 전달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연구과정과는 별개로 또 굉장히 많은 이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그렇게 다양한 이들의 참여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 그리고 예술이 언어에 비해 더 열린해석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퍼포먼스적 전회는 연구대상에 대한 해석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연구에 다채롭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폭넓은 의미에서 연구 참여자가 많아지면 중구난방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공연의 형태처럼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예술적 글쓰기는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독자가 그 부분을 채우도록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거기서 질적 연구가 양적 연구보다 비교우위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칫 대충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져 연구의 엄밀함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음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질적 연구는 혼자서만 진행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서, 아니면 혼자서 진행하더라도 끊임없이 동료들이나 선진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연구자의 해석이 얼마나 공감 받을 수 있을지 미리 알 수도 있고, 연구자가 남겨둔 여백이 너무 크다면(즉 조금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채워 넣을지도 함께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를 내놓을 때 예술적인 표현, 즉 몸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사용하더라도 비슷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발화의 의미와 효과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맥락, 관습, 의도 등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탈맥락적으로 다른 의미로 다른 의도를 담아낼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390~391p)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와의 만남을 통해 연구 대상에 대한 글을 쓸 때에 가지고 있는 의도와 생각은 결코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없다다. 독자는 독자 나름의 선이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서 연구 결과를 해석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적 연구에서는 데이터의 분석이 표준화된 수치에 따라 제시되기 때문에 이런 한계 안에서 이 연구는 이런 의미를 지닌다고 하면 거기에 독자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하지만 질적 연구는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짧지 않은 분량의 면담자료, 참여관찰보고서 등이 연구 결과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은 주로 언어를 통해 진술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맥락과 상황에 따라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다른 의미를 읽어낼 여지가 많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얻어갈 사람은 알아서 얻어가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질적 연구에 요구되는 연구윤리는 연구 결과를 조작하지 않는 것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질적 연구 - 어렵지만 매력적인


질적 연구를 처음 접하게 해준 조용환의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질적 연구 이거 멋있다,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아 질적 연구 이거 어렵겠다, 힘들겠다로 바뀌었다. 현상학 하나로 질적 연구의 이론적 기초를 이해하는 것과 온갖 포스트모더니즘 철학들이 질적 연구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그 이론적 기초와 방법론을 이해하는 것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질적 연구자가 가져야 할 반성적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질적 연구에서 지켜야 할 윤리도 꽤 까다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무게감에 어느 정도 압도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질적 연구는 연구자가 세계를 이해하는 아름다운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질적 연구의 매력을 알게 된 지금 어차피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데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