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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공연

본부스탁 후기













2011년 6월 17일 ~ 18일 이틀에 걸쳐 '서울대학교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위한 본부스탁 페스티벌(본부스탁)'이 열렸다. 본부스탁이라는 이름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따온 것이다. 우드스탁을 기록한 <테이킹 우드스탁>처럼, 본부스탁을 기록하기 위한 <테이킹 본부스탁>(아마도 가제?)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촬영중이라고 한다. 사실 본부스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5월 30일 서울대학교 비상총회 이후 이뤄진 학생들의 본부점거농성이 만들어온 '문화시위'의 맥락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종강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오늘은 그저 현장의 감동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본부스탁 페스티벌에 대한 후기만을 남기고자 한다. 

 1. 라인업: 학내밴드 & 저항하는 뮤지션 & '선배들'

본부스탁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출처: 본부스탁 홈페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아마도 18일 '브로콜리 너마저'와 '3호선 버터플라이'가 아닐까 한다(실제로 언론에는 브로콜리너마저 외 24개팀 이런 식으로 보도가 나갔다고 함). 본부스탁의 판이 커진 것에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브로콜리 너마저, 눈뜨고 코베인, 그리고 (경륜 돋는) 3호선 버터플라이 등 멤버 다수 혹은 전원이 서울대학교 출신이며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선배들'의 합류가 분명히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팀들이 합류하기에 앞서 본부스탁의 태동에는 많은 서울대학교 학내 밴드들의 존재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매 학기 축제마다 미니락페라 할 수 있는 '따이빙굴비'가 하룻밤 무대를 차지하며, 이 무대에는 (매해 수준 차이는 있지만) 꽤나 쟁쟁한 팀들이 오른다. 학생이 워낙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밴드가 많은 학교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본부스탁에 참여한 팀의 3분의 1정도는 현재 재학생들이 주축이 된 밴드이다. 지금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법인화 관련 투쟁은 서울대만의 것이 아니라, 전 사회의 문제에 관련된 것이지만, 어찌됐든 서울대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 이 팀들의 참여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 할 것이다.

여기에 본부스탁의 상상력이 한 단계 '학외'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에는 얼마 전 투쟁 승리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진 '두리반'의 뮤지션들이 한 몫 했다. 이 '저항하며 노는' 뮤지션들은 본부스탁의 기획이 나오기 전부터 본부점거농성의 현장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있는 락페라는 기획이 나올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추측형 문장이 많은 것은 본인이 기획팀이 아니라서... ㅠㅠ). 악어들, 밤섬해적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등 2010년 '새로운 방식의 저항공간'으로 떠오른 두리반에서 공연하던 뮤지션들은 본부스탁이 그저 놀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팀들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서울대 선배' 뮤지션들의 합류는 본부스탁에 본격 락페라 이름 붙이기 민망하지 않은 지위를 선사해주었다(대중적인 인지도와 뮤지션으로서의 실력 측면에서). 선배나 동문 타령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뮤지션들이 합류하는데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은 꽤 큰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하기에.. 뭐 ㅋ 앞에서 언급했지만, 언론의 주목은 물론 인디갤러등 학외의 많은 사람들을 본부스탁으로 이끈데는 이 선배 뮤지션들의 이름값이 한 몫 했음에 틀림 없다. 


결국 <총장실 프리덤>이 그러했듯, 주최하는 사람들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본부스탁의 라인업은 크게 학내 밴드, 저항하는 뮤지션, 그리고 인디씬의 선배들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인업만 봐도 현재 법인화투쟁의 중심에 서있는 '서울대학생들'이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저항하며 놀기 위해' 개최한 '락페스티벌' 본부스탁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당연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


 2. 간략하고 전반적인 공연 후기

많은 대학생 밴드가 그렇듯, 학내에서 활동하는 밴드는 창작곡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보통 맘 먹고 '음악을 하겠다'고 창작을 시작하면 학내에만 머물진 않으니). 그렇기에 학내 밴드는 대개 유명 뮤지션의, 혹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담은 곡을 커버한다. 17일에는 락페의 신 뮤즈의 카피밴드 'Bije'가 있었고, 18일에는 '소나무'가 '국카스텐'의 <거울>을 불렀다. 하지만 창작곡이 아니라고 해서 감동이 없거나 적었던 것은 아니다. 학내 밴드의 공연은 연주와 보컬도 좋았지만, 이번 투쟁에 관한, 혹은 그냥(?) 어쨌든 쎈쓰 돋는 멘트와 퍼포먼스가 많아서 참 좋았다. 특히 (밴드라 하긴 뭐할 수 있지만) '관노협'의 <반격>(이 곡도 참 굿굿)에 이어 무대에 오른 유투브 스타 'SNUV'의 <총장실 프리덤>은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포털에 게시중단을 요청한 대학본부의 찌질함을 폭로하며 한층 진화된(?) 오프라인 퍼포먼스로 기록에 남을 것이고, 'SNUV'의 돌발해체선언에 이어 무대에 오른 '점거장기화와 얼굴들'의 공연은 현재 본부점거를 둘러싼 여러 사태에 대한 온갖 패러디로 가득한, '제 2의 <총장실 프리덤>'이라 하기에 충분했다(영상 안 찍은게 恨이다..). 그 외에도 <벡터맨>, <게이바> 등으로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돌고래 다이빙까지 준비한(-_-ㅋㅋ) 'Juvenilia', 아이들을 사랑해서(?) 만화주제가를 부르는 '투니버스'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학내 뮤지션들의 쎈쓰 넘치는 무대 구성이 참 돋보이는 페스티벌이었다.


굳이 학내 밴드가 아니어도 참여 뮤지션들의 주옥같은 멘트나 애드립은 음악이 주는 감동에 쏠쏠한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잔디를 물어 뜯고 "총장님의 잔디"라고 일갈한 '악어들', 말빨로 좌중을 휘어잡고 시작한 '울혈의 어쿠스틱' 단편선의 멘트(& 병샷 ㅋㅋ), 그리고 정말 잊을 수 없는 '밤섬해적단' ㅋㅋㅋ 본인들도 언급했고 여러 사람이 실제로 언론보도에 대해 걱정한(?) '밤섬해적단'의 공연은 한 친구의 평에 따르면 이렇다. "그래 사람이 미치려면 이렇게 미쳐야지" (지금 정황상 언론들은 '밤섬해적단'이 공연할 때까지 취재를 한 것 같지는 않다) 밤섬이 본부를 떠난(자다가 오후 12시쯤 일어났다고 함) 18일에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각종 드립들(무스타파더거: "노래 더 듣고 싶으면 학교를 우리한테 파세요" 무스타파더거가 호응 유도하려고 자꾸 오버하자 나잠수: "얘가 요새 조용한 밴드를 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이래요") 덕분에 여러 차례 웃을 수 있었다.

이렇게 '위트'가 본부스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본부스탁은 스탠딩 코미디쇼가 아니라 '락페스티벌'이다. 락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과 광기. 관객들로 하여금 미친듯이 뛰게 만들고, 소리 지르게 하는 힘! 17일 공연에서는 뮤즈 카피밴드 'Bije'가 '떼창'과 '점핑'의 시작을 알렸고, 18일 공연에서는 '당근과 채찍'의 선동적인(?) 선곡(Get Up을 죽어라 외치는)에 이어 '투니버스'의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뜻)로 스탠딩 공연의 묘미가 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미친듯한 점핑보다는 들썩들썩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 광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눈뜨고 코베인'의 관중댄스, 그리고 'Renata Suicide'와 '제 8극장'으로 이어지는 집단 스탠딩 굿판(-_-ㅋㅋ)의 향연(아무리 그래도 음향장비 위치 생각 안하고 생수 너무 뿌리더라..ㅋ)은 '이건 진짜 락페야'라는 생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3. 개인적인 감상

이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해보자. 솔직히 영상으로 남겨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 건 단연 'SNUV'와 '점거장기화와 얼굴들'이지만, 지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공정하게 제끼고..라기보단 앞에서 할 말 다 했고 ㅋㅋ 개인적으로 락페라는 취지에 걸맞게 놀았던 것은 '눈뜨고 코베인'의 무대였다. 그 앞에 '이기타와 친구들'로 공연하며 <포크레인>을 불러주시는 은사에 감동받아(ㅠㅠ) '3호선 버터플라이'의 경륜 및 열광 돋는(이땐 치맥 흡입하느라 뒤에 빠져있었음 ㅠㅠ) 무대에 이어 '눈뜨고 코베인'이 등장하자 혼자 일행들 버려두고(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음..) 스멀스멀 앞으로 기어나갔다. 적당히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점핑은 물론 떼창에 관중댄스까지 -0-;;; 원래 안하는 짓을 하게 된 것은 내가 눈코 3집을 너무 열심히 들었기 때문일 것이야... ㅠㅠ 암튼 락페에서 노는 사람들이 어떤 맛에 그 현장을 자꾸 찾게 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랄까..? 


그리고 최대의 관객들과 함께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무대는 '광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떼창'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에 담긴 가사와 감성이 현재의 20대들이 공유하는 '무언가'를 잘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제 무대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는 자신들의 음악과 본부스탁의 접점을 잘 짚어냈던 것 같다. 보컬 덕원과 관객들의 '팔뚝질'(<졸업> 떼창 하면서)은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락페스티벌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뮤지션의 발견 아닐까. 어느 무대나 나름의 분위기와 음악이 있어 좋았지만 특히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Project Storyteller'!! 학내 밴드지만 학외에서도 활동하는 이 어쿠스틱 듀오는 분명 'DEPAPEPE'와 닮아있다(하지만 노래를 한다!). 공연 경험이 많아서인지 정말 깔끔하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맞춰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 연주. 앨범도 있다고 하시니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오늘 타임테이블이 미리 공개되는 바람에 소위 '끝판왕'들의 공연 전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소나무', 'Project Storyteller', '당근과 채찍', '투니버스' 모두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 못보신 분들 많이 아쉬워 하시라고.. ㅋ 암튼 'Project Storyteller'의 발견은 정말!! 쵝오!!

 4. 그/녀들에게 감사합니다

분명 본부스탁은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좋은 행사였다. 멋있었다. 농담처럼 말해왔지만, 어떤 의미에선 정말 '전설'이 될 것이다. 퇴학을 운운하는데도 행사를 추진한 기획단, 본부 측에서 행사에 필요한 장비를 못 들여오도록 경륜산성(셔틀버스 바리케이트)을 쌓는 도중에 몸을 던져(?) 버스 앞을 막아선 사람들,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느라 정작 자신들은 무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수많은 스탭들, 날라리선배를 비롯하여 행사진행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준 사람들, 자발적으로, 혹은 개런티가 보장되지 않는데도 흔쾌히 참여해준 뮤지션들. 정말 좋은 무대, 감동적인 현장이라는 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수고, 그리고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그/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덧. 본부스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본부를 지키던 사람들,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하고 있던 총운위원들, 총집들, 그리고 여전히 단식중인 부총학생회장의 모습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