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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단상

김밥집, 임대료, 그리고 백종원



김밥집, 임대료, 그리고 백종원



사정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 그러니까 10년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네 김밥집 하나가 또 없어지는 것 같다. 내가 애용하던 곳은 아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가게다. 가게가 폐업한다고 내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가게에서 그쪽으로 확장이전한다는 공지를 봤다. 확실히, 녹두의 풍경은 200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꾸준히 변했다.  1~2달 전에는 참참참이 없어져서 굉장히 우울했다. 진짜 10년 전부터 참치김밥은 참참참이었는데 ㅠㅠ 


이 참치김밥을 다시 먹을 수 없다니.. ㅠㅠ


특히 군복무 하는 2년간, 대략 6주 간격으로 휴가 나올 때마다 어딘가 가게 하나씩은 꼭 바뀌어있었던 것 같다. 언론에서 자영업자들이 나간 자리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현상을 다룰 때, 녹두를 사례로 거론했던 것도 기억난다. 지역 상인들은 이게 사시폐지/로스쿨 도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울대생과 고시생이 먹여살리던(?) 동네인데, 서울대생은 이미 상당수 서울대입구역으로 옮겨갔고, 고시생 인구가 빠지면서 상권이 망한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달 전, 방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이랑 한창 다니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 동네에 서울대생/고시생이 아닌 인구가 조금씩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방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을 (경전철 때문에 어느 정도 나아지리라는 심리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방값이 커버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부동산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권이 크지 않은 이런 동네에서도 가게가 망하면 자영업자는 억대의 손실을 본다. 그런데 건물주인은 별 손해를 보지 않는다. 가게 월매출이 얼마가 되든 어쨌든 정해진 임대료를 받기 때문이다. 녹두의 방값은 상대적으로 싸다고 하지만, 상권의 크기에 비해 상가 임대료는 결코 싼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장사를 해온 가게들이, 이 지역 상권을 만들었던 주역(?)들이 장사를 접는 것은, 사시가 폐지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임대료의 문제라고 해야할 것 아닌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백종원이 CU에 도시락 브랜드를 내놓는다는 뉴스를 링크하며 골목상권은, 김밥집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계는 안중에 없냐며 비난하는 글을 봤다. 우선 백종원의 도시락은 편의점 도시락 수요 내에서(혜리/김혜자/홍석천 등) 경쟁하지 그게 김밥집과 경쟁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앞서 언급한 김밥집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봤다. 그간 녹두를 거쳐갔던, 1~2개월 사이에 망해버린 수많은 가게들과, 녹두의 터줏대감과 같았던 많은 맛집들의 흔적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김밥집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건 새로운 편의점 도시락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임대료 아닌가? 나도 왜 백종원이 사업을 이렇게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지 모르겠는데, 최근 런칭한 것들은 대개 별로 좋은 평가는 못받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인기에 편승한 거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못받으면 손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이 거품은 알아서 꺼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부동산 임대료가 알아서 내릴까? 


높은 임대료를 책정하는 건물주들은 손해에 직접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영화 <인사이드 잡>은 월스트리트의 사기꾼 샊 금융업 종사자들, 경제학자들이나 관료들이 스스로 책임질 필요가 없는 위험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그 위험으로부터 이익을 취했기에 2008년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본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권력'이다. 백종원의 회사는 사업이 실패하면 금전적인 책임을 진다(실제로 망해보기도 했고, 사업 철수도 몇 번 있었다고 안다). 부동산 임대업자들이나 중개업자들은 한번 계약서를 쓰면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에 시장을 맡기면 피해는 그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본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하다. 골목 상권이나 김밥집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생계가 걱정된다면, 쓸데없이 백종원에게 시비걸지 말고, 부동산 임대료의 문제를 거론해보자. 차라리 임대 문제가 얽힌 '월드 스타' 싸이를 털고, 통영생선구이와 관련된 기사를 링크하자. 


아, 참참참 없어져서 우울하다는 글을 길게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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