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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단상

표현의 자유가 고생이 많다


표현의 자유가 고생이 많다



얼마 전 JTBC <스포트라이트>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다뤘을 때 김조광수 감독 반대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옹호한 패널의 주장은 이랬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 발언을 못하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역차별 발언까진 안했지만, 지금 여성 혐오에 대해 이와 똑같은 논리를 펴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풍자하겠다며 새마을 운동 마크를 단 여성이 무릎 꿇고 일장기 마크를 단 남성 사이의 오랄 섹스를 암시하는 작품을 그린 작가이다.


(이미지 파일과 그에 대한 비판을 담은 페이지)


당연히 비판이 쏟아졌고, 풍자 화가는 예술은 예술로 봐달라며 대응했다. 그래서야 비판이 멈출 리가 없다보니(-_-), 오늘 오전에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장문의 포스팅을 썼다. 핵심은 아래 두 문장에 담겨있다.

 

"우리 시대의 남성우월성. 여성혐오. 성차별 성추행 성폭력, 예술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도 필요하면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더러운 문화를 부치긴 것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수긍하고 웃을 수 있는 풍자 이미지를 만든 거잖아요." (원문 링크)

 

우선 이 사람이 스스로 '더러운 문화'라고 이름 붙인 바를 부추기지 않았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여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 공개한 이미지를 통쾌함으로 소비하는 순간, 이미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코드는 생명력을 키우는 것이다. 작가는 추천을 눌렀던 1100분이 넘는 분들을 운운하며 소위 동지들의 숫자를 등에 업고 작품의 의미를 강변하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작품에 반영된 차별적 시선의 파급력도 크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수긍하고 웃을 수 있는 풍자 이미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가는 쏟아지는 댓글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의 작품이 왜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저 인용문의 주어에 과연 여성이 들어갈 수 있는가? 굴욕적인 자세로, 남성에게 성적 봉사를 제공하는 주체로서, 심지어 현실의 한 구체적인 여성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그려놓고 이건 풍자니까 이해하고 수긍하고 웃으라고 강요한다. 소수자 비하를 웃음으로 소비한다는 점에서 딱 <개그 콘서트> 수준의 저질이다.


마지막, 지금 쏟아지는 것은 비판이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할만한 탄압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페이스북 계정이 폐쇄 당하거나 포스팅이 금지된 것도 아니다. 사실 페이스북에서 탄압이라는 표현을 가장 정당하게 쓸 수 있는 계정은 매갤 페이지다. 페이스북 코리아가 또 -_- 게시물의 표현 문제로 매갤 저장소 페이지를 폐쇄했다. 반면 여혐 발언의 온상인 김치녀 페이지는 수없는 신고에도 불구하고 폐쇄되지 않고 있다


(원문 링크)


또한 이 작가의 생계를 위협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진중권 교수는 옹달샘 사태 당시 잘못은 잘못이어도 생계를 건드리는 건 오버라는 주장을 폈다. 어쨌든 이 작가한텐 해당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가지려한다는 식의 비약을 거쳐 표현의 자유를 동원해 이 작가가 막아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비판의 목소리 자체이다. 그러니까 결국 맥락을 종합해보면 (대한민국의 행정부를 비판하는 중대한 의미를 담은 나의 작품에 여성 혐오 운운하며) “욕 하지 마!” 정도가 저 길고 긴 포스팅에 담긴 행간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권력에 의한 탄압이 아니라 공론장에서의 비판이 오가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실드가 적합한지도 의문이지만, 그 문제를 떠나 진짜 표현의 자유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도 표현의 자유로 보고 쿨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문제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술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막으려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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